Page 71 - 고경 - 2021년 7월호 Vol.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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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개연기」의  내용을  보면
             “1358년 적병이 이 건물에 불을 질렀
             고, 이때 불길에 불상 얼굴이 훼손됐

             고 1376년 원융(圓融, 964-1053)이 무

             량수전을  수리하였으며  1611년에는
                                                         부석사 무량수전.
             비바람에 보가 꺾였다.”고 적혀 있다.
             그런데  1376년  무량수전을  수리한

             사람은 원융圓融이라 적었지만 원응

             (圓應, 1307-1382)의 오기이다.
               그리고 「부재묵서」에는 “1376년 왜
             구로부터 입은 화재 피해를 수리하였                          봉정사 극락전.

             고, 1611년에는 꺾어진 서까래를 교

             체하였다.”고 적고 있다. 두 기록 모
             두 1376년 왜(적)에 의한 피해를 수리
             하였고, 1611년에는 보 또는 서까래

             가 부러졌다는 것을 공통적으로 적                           수덕사 대웅전.

             고  있다.  목조건축의  특성상  화재             사진 5.  종도리와 소슬합장의 관계. 부석사를 제
                                                     외한 다른 건물은 소슬합장이 종도리를
             피해는 완전한 소실로 이어지는 것                      직접 지지한다.
             이 일반적이라 「개연기」에 의하자면

             1358년 무량수전은 불탔으며, 1376

             년 중건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리고 1611년 다시 퇴락해 수리
             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1376년에 새로 지은 건물이라고 보기에는 바로 1년 뒤 경내에 지어진

             조사당과 양식이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건축역사학계의 대가大家 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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