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5 - 고경 - 2023년 3월호 Vol.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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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을 위해 야소교를 비판하는 교육이 이루어졌다. 이 비판에 앞장선 이들
중 한 명이 코잔인 류온(1800~1885)이다.
코잔인 류온의 야소교 강의는 간단히 정리하면, 먼저 신구약성서의 개
요와 함께 천도天道와 천교天敎가 교의라고 설명했다. 특히 유교와 비교해
설명했는데 유교의 수신도 좋으나 군신·부자 윤리로는 부족하다고 지적
했다. 군신관계를 뛰어넘는 신과 인간의 관계와 주종관계가 필요하다고 봤
다. 유교에서는 들어본 적이 없는 「지극한 가르침」이 바로 야소교라고 설
명했다. 야소교는 출가를 위한 법이 아니라 재가 상태로 미래의 해탈을 위
한 종교이다. 다만 현재의 야소교는 16세기의 천주교와는 다르며 불교와
신도도 비슷한 인륜과 도덕을 이야기하지만 모욕적인 내용은 입에 담지 않
는다고 했다.
코잔인의 야소교에 대한 시각은 당시로서는 설득력이 있는 해석이었다.
재미있는 점은 정토 진종 승려인 코잔인이 야소교를 불교보다 유교와 비
교해 상이성을 설명했다는 점이다. 코잔인의 시각은 핫카가 이어받은 듯
하다. 핫카는 에드킨스가 저술한 불교비판서 『석교정류釋敎正謬』(1857)를 반
박하기 위해 『판유록辦謬錄』을 저술했다. 『판유록』의 내용 중 “불교를 배척
하고 거짓으로 대해 참혹하게 하는 것은 물론 우상숭배에 빠져 질투의 신
으로 불리는 근거가 된다.”라고 야소교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특히 우상숭
배 옹호는 코잔인의 해석과 연결점을 가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핫카가 야소교와 직접적으로 접촉한 사건은 1867년과 1869년에 일어난
다. 1867년 일명 기리시탄切支丹으로 불리는 기독교 신자 3천여 명이 나가
사키長崎에서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2년 후 카나자와金沢에서도 5백
여 명이 체포되었다. 핫카는 번주의 명을 받아 이들의 개종을 담당하게 되
었다. 핫카가 이 임무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내용은 찾기가 어렵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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