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6 - 고경 - 2023년 3월호 Vol.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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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함께 기리시탄 개종을
담당한 이시카와 슌다이의
기록에서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이시카와의 행적을 엮
은 『걸승 이시카와 슌다이
언행록傑僧石川舜台言行錄』
사진 6. 1867년 나가사키의 기리시탄 탄압에서 살아남은 생
존자들. 출처 『기리시탄의 부활』.
(1951)에는 “완강하게 절개를
굽히지 않는 신자들을 보면 다른 한편으로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라는 고
백이 있다. 당시 핫카 일행의 기리시탄 개종 임무는 진종의 의도대로 원만하
게 진행되지 못한 것 같다.
유럽 시찰 중 핫카는 오구루스 코쵸가 의뢰한 영국 교회의 규칙을 번역
해 긴급으로 일본에 보내기도 했다. 그리스도교에 대한 핫카의 시각은 그
가 귀국 후 오구루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드러난다. 편지에는 신구(카톨릭과
칼뱅파 신종교) 양교에 대한 경시감과 함께, 신교가 존속하기 위해서는 개혁
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핫카가 종교개혁을 언급한 것은 정토 진종의 개
혁 역시 필요하다는 의미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핫카는 신불을 합병해 국
민을 교화한다는 교부성의 방침에 동조했고, 이 점이 신불분리와 정교분
리를 주장한 시마지 모쿠라이와의 상이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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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농산리 석조여래입상
보물, 통일신라시대, 경남 거창군 북상면 산 63.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불상 양식을 따르고 있는 불상이다. 자연석을 적당히 다듬어 부처님의 두 발을 새
긴 대석과, 불신과 광배를 함께 조성한 두 개의 돌로 구성되어 있다. 부분적인 파손이 있으나 규모가 비교
적 크고 정제된 조각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2021년 11월 25일 현봉 박우현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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