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8 - 고경 - 2023년 7월호 Vol.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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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운은 일화양행을 퇴직한 후, 나카지마의 추천에 따라 동문학사에서
          함께 일한 도쿠라 고로土倉五郞와 사업을 시작했다. 이들이 한 첫 사업은 일
          본 내지의 물건을 들여와 북경에 공급하는 일종의 보따리 행상이었다. 물

          건의 품목 결정과 사업 수완은 나카지마의 조언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

          다. 하지만 사업은 족족 정상가도를 달리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1912년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멸망하면서 카이운의 사업도 파산했다. 3년 후, 그
          는 일본에 남은 부인이 병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중국에 남은 모든

          사업을 접고 귀국했다(38세).

           귀국 후의 카이운의 생활은 부인의 병원비와 생활비로 인해 곤궁해졌
          다. 재기의 꿈조차 꾸지 못할 때, 지인들이 손을 내밀었다. 교토시의회 부
          회장이 된 일화양행 시절의 동료와 은사 스기무라가 자금을 마련해 주면

          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다음 호에서는 카이운의 인생 역작인 카루피

          스 음료 개발과, 불교적 기반 아래 사회적 환원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이
          야기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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