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5 - 고경 - 2023년 7월호 Vol.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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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도항에 대해 “중국대륙은 당시 젊은이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좁
은 일본과는 달리, 중국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었다.”라고 당시의 상황을
회고했다.
청일전쟁 이후, 중국은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기회의 땅이었다. 전승의
기쁨이 사회 전반에 퍼져 있었고, 중국으로 건너가면 막대한 돈을 벌 수 있
다는 낭만과 희망과 넘쳐났다. 카이운 역시 이러한 시대적 기대감에 부풀
어 있었지만, 중국 도항은 쉽게 진행되지 못했다. 나카지마가 카이운의 교
사 부임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꼬인 상황에서 우메하라가 나카지마를 설
득해 카이운은 어렵사리 중국 도항의 기회를 잡았다.
동문학사 생활과 상업활동의 새 출발
나카지마에 따르면 동문학사의 설립은 중국의 문화를 세계적 문화 수준
에 맞춰 진보시키기 위함이었다. 중국 문화에 능통한 일본인들이 중국을
교도하기 위해 동문학사를 설립했다고 밝혔다. 좀 더 그 실상을 들여다보
면 북청사변 이후 북경의 참상을 접하자, 일본은 유교와 불교를 전해 준 중
국에게 현재 일본이
가진 신문명으로 보
답해야 한다. 이를
위해 중국인 교육을
진흥시킨다는 내용
이 기저에 깔려 있
다. 이러한 시각은
오구루스 코쵸로부 사진 4. 북경 동문학사 생도들. 사진: 『청국사진첩』(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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