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6 - 고경 - 2023년 7월호 Vol.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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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 시작한 서본원사의 아시아 포교와 맥락이 닿아 있다.


              “동문학사는 청운의 꿈을 품고 중국으로 건너간 일본의 청년들이

              중국의 진짜 모습을 확인한 곳이다. 중국어를 연구하고 동시에 중

              국인에게 일본어를 가르쳤다. 중학교 정도의 교육을 통해 일본을
              알리고자 했다. 더해서 동문학사 개설을 통해 중국의 모든 관官과
              학교에 일본인 교사를 배치하는 것이 목표였다.”

                                       - 미지마 카이운 『나의 이력서』(1980) 중에서-



                                      동문학사의 교육과정은 전문반과 보통
                                    반으로 나뉘었다. 전문반의 교과내용은 아

                                    세아지리, 영국사, 청국근세총지, 정치, 경

                                    제 등을 중심으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보
                                    통반은 중등교육 수준의 지리, 역사를 가
                                    르쳤다. 카이운은 1902년 2월부터 다음해

                                    11월까지 약 1년 9개월간 동문학사에서 재

                                    직했다.
                                      모친의  병환으로  인해  조주학당趙州學

          사진 5.  자서전  『초련오십년初恋五十年』  堂으로 옮겨 반년 정도 교사생활을 한 후,
              (1965).
                                    다시 동문학사에 재부임했다. 동문학사에

          서의 마지막 활동은 그의 인생에 있어 전환점이 된 일화양행日華洋行에서
          의 활동이었다. 일화양행을 소개하기 위해서는 먼저 동문학사의 경영난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동문학사는 원대한 포부와는 달리 경영면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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