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6 - 고경 - 2023년 9월호 Vol.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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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정에서 최고의 성과는 운강석굴 발견일 것이다. 1902년 6월 16일,
          이토 일행은 대동大同에 도착하여 이틀 후 지현知縣에서 서쪽으로 30리 떨
          어진 운강석굴을 발견했다(1902년 6월 18일경). 그는 운강석굴을 발견한 후

          조사노트에, “운강석굴의 불상, 장식, 문양 등이 호류지와 같으며 토리파

          불상과 부합하다.”고 기술했다. 더해서 ‘호류지 불상의 고향을 찾았다’고
          기술해 호류지 불상의 연결점으로서 운강석굴을 거론했다.



              “불상의 모습, 장식 수법, 문양 등은… 실로 우리 호류지식과 똑같

              다. 토리불사鳥仏師의 작품과 부합하다. 벽화와 같은 형태이고 금
              당의 건축기법과도 부합한다. 실로 의외 중의 의외이다. 나는 호류
              지의 고향을 알게 되어 너무 기쁜 나머지 점심을 먹는 시간도 아까

              워 오후 5시가 넘을 때까지 단번에 조사했다.”

                                               -이토 츄타, 「필드노트」 중에서-


              “운강석굴의 건축적 성질은 돈황과 비교하면 중국적 취미가 더해

              서 지붕, 기둥, 장식문양 등이 호류지와 부절符節을 맞춘 부분이 적

              지 않다. 희랍계와 비교해 보면 코린트식 및 이오니아식 기둥머리
              [柱頭]가 있고, 기둥은 거칠지만 엔타시스적 느낌이 있다. 간다라 양
              식으로 인정할 만한 제형미梯形楣, 중인도 전래로 볼 수 있는 두공

              이 있다. 기원은 명료하지 않지만, 서역계의 꽃문양이 있다. 돈황

              의 천개는 호류지식 천개에도 적용되었다.”
                                    -이토 츄타, 『일본불교건축의 원류』(193-) 중에서-



           이토는 운강석굴을 구성하는 각각의 요소들을 개별적으로 바라보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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