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0 - 고경 - 2024년 3월호 Vol.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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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그레이스톤 제과점
을 열었다.
몇 년 후 글래스맨은
용커스를 기반으로 사
회 참여적인 활동을 적
극적으로 하였는데, 먼
저 용커스 선 공동체 본
사진 5. 그레이스톤 빵 공장을 방문한 필자(1998년경).
부를 매각하고 이곳에
있던 천주교 수녀원을 매입하였다. 이곳은 곧 사회변화 세력을 추동하는
단체들의 네트워크인 ‘그레이스톤 만다라(Greyston Mandala)’의 발상지가
되었다. 또 제과점 운영의 목표를 확대하여 빈민, 노숙자, 미숙련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하였다.
필자는 1990년대 말에 그가 운영하는 빵 공장을 직접 가본 적이 있다.
아시아 전통불교와는 다른 그가 시도하는 사업을 보고 매우 놀랐던 기억
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는 또 오래되고 낡은 집과 건물을 사들여 이것을 개
조하여 노숙자들을 수용하는 사업도 했다. 그레이스톤 가족 숙소라는 노
숙자 주거 시설을 열었으며, 당시에는 대부분 사람들이 꺼려하는 에이즈
환자, 정신병자, 화학 약물 의존자들을 치료하는 큰 센터를 운영하였다.
그때 시 정부나, 주 정부에서 지원받는 돈이 수백만 달러가 될 정도로 큰
규모였다. 비영리 단체로서 이런 큰돈을 지원받으려면 미국사회의 사회복
지 제도를 잘 알아야 한다. 그 시대 사회문제를 꿰뚫어 보고, 그 나름의 해
법을 제시하는 설득력 있는 제안서를 연방정부와 주정부 나아가 재단 등
에 제출해야 받을 수 있다. 당시에 이런 프로그램은 미국에서 태어나 교육
을 받은 글래스맨이 미국의 사회복지제도를 잘 아는 백인이었기에 가능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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