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2 - 선림고경총서 - 01 - 선림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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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의 행리(行履)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배휴는 당시 지방장관으로 재직하다가 선종(대중황제)이 즉위하
              고 나서 조정의 상공(相公)벼슬에 올라 중앙행정을 담당하게 되었
              습니다.그는 완릉록 에서 보인 바처럼 홍주(洪州)개원사(開元寺)
              에서 벽화를 보고 황벽스님에게 거량하던 중,황벽스님이 “배휴야!”
              하고 부르자 배휴가 “예!”하고 대답하니 대사가 “어느 곳에 있는
              고?”하는 말끝에 깨치고 이 기연으로 대사의 재속제자(在俗弟子)
              가 된 것입니다.그는 대사뿐만 아니라 위산 영우(潙山靈祐)선사에
              도 귀의하였으며,화림 선각(華林善覺)과도 교분이 있었고,규봉
              종밀(圭峰宗密)과는 도연(道緣)이 깊었습니다.배휴가 종릉,완릉
              두 곳에서 대사를 모시고 조석으로 문법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으며,
              그 문답 내용을 필록하여 둔 것을 대사의 입멸 후 광당사(廣唐寺)
              의 옛 법중(法衆)의 증명을 얻어 세상에 유포시킨 것이 전심법요
              인 것입니다.이처럼 배휴라는 훌륭한 필록자를 얻음으로써 황벽스
              님의 법문이 세상에 크게 빛을 보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
              다.
                대중황제는 본시 당 헌종(憲宗)의 아들로서 어려서부터 영특하였
              는데,열세 살 때 형 목종(穆宗)의 용상에 올라가 장난삼아 좌하의
              신하들을 읍(揖)하게 한 적이 있습니다.이로 말미암아 뒷날 동생의
              아들인 무종(武宗)으로부터 빈척(擯斥)당하여 사지(死地)에서 구출
              되어 입산하고,향엄 지한(香嚴智閑)선사 밑에서 사미가 되었다가
              나중에 염관 제안(鹽官齊安)선사 회하에서 서기(書記)를 보았습니
              다.당시 황벽스님은 수좌(首座)로 있었는데,하루는 불전(佛殿)에
              예배하는 대사께 대중사미가 뒤에서 “부처에 집착하여 구하지 아니
              하고……”하는 물음으로 거량하다가 대사로부터 뺨을 두 차례 얻
              어맞았습니다.뒷날 대중사미는 당나라 황제가 되었는데 그가 제16
              대 선종(宣宗)입니다.선종은 앞날의 일을 생각하고 대사께 ‘추행사
              문(麤行沙門)’이란 호(號)를 내렸는데,당시 상공으로 있던 배휴의
              주청(奏請)에 의하여 ‘단제선사(斷際禪師)’로 개호(改號)하였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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