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0 - 선림고경총서 - 01 - 선림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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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대사께 문법하던 것을 필록(筆錄)하여 두었다가,대사께서 입적
하고 난 다음 그 대강을 대사의 문인들에게 보내어 청법(聽法)당
시의 장로(長老)들과 대중의 증명을 얻어서 세상에 유포시킨 것입
니다.배휴가 서문을 쓴 해가 대중(大中)11년(857)이므로,대사께
서 입적한 지 2,3년 뒤로 추정됩니다.
전심법요 는 배휴 자신이 종릉과 완릉 두 곳에서 문법하던 것
을 직접 기술한 것이며, 완릉록 은 배휴가 완릉의 개원사에서 문
법하던 기록을 기저(基底)로 하여 뒤에 시자들 측에서 엮은 것이라
고 추정됩니다.그것은 전심법요 에서는 배휴 자신의 이름으로 직
접 쓰고 있으나, 완릉록 에서는 “배상공이 운운……”하면서 시
종일관 제3인칭으로 기술한 것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그리하여
완릉록 에서는 전심법요 의 내용과 더러 중복된 부분이 있음을
보게 되는데,그 후반부 “대사는 본시 민현의 사람이다[師本是閩
中人]”로부터는 옛 유통본에는 본래 없던 부분으로서 전반부보다
분량이 더 많으며,당 대중년간(848~859)에 또 다른 사람에 의하
여 추가로 기술된 것으로 사료됩니다.여기에서는 대사의 출생 및
출가 인연에 관해서 짤막하게 언급하고 있으며,대사께서 초기에
천태(天台)에서 노니시던 일과 귀종(歸宗)염관(鹽官)남전(南泉)
등의 선사들을 찾아 제방을 역방(歷訪)하면서 문답하고 거량(擧揚)
하던 대사의 기봉(機鋒)과 기연(機緣)들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또
한 배휴가 홍주 개원사에서 벽화를 보고 거량하다가 개오(開悟)한
사유를 함께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후반부는 송나라 원풍(元豐)8년(1085)에 편찬되었다가 명나
라 만력(萬曆)17년(1589)에 재편된 사가어록(四家語錄)에 실려
있는 것입니다.여기 번역에 사용한 원본은 명본(明本) 4가어록
가운데 제4권 황벽단제선사전심법요 및 제5권 황벽단제선사완
릉록 을 모본으로 삼아 번역하였습니다.원풍 8년판의 4가어록 에
는 완릉록 의 전반부밖에 실려있지 않았으나,명나라 때 재편하면
서 천성광등록(天聖廣燈錄) 제8권에서 그 후반부를 옮겨 증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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