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 - 선림고경총서 - 05 - 참선경어
P. 7
해 제(解題)
참선경어(參禪警語)는 선경어(禪警語) 또는 박산참선경어(博山
參禪警語) 라고도 하는데,신주(信州)박산 무이(博山無異)스님이 참선
에서 생길 수 있는 병통을 지적하고 후학을 경책하기 위해 지은 글이
다.
박산(博山)스님의 휘는 대의(大艤)또는 원래(元來)이며,자(字)는 무
이(無異)이다.용서(龍舒)사람으로 속성(俗姓)은 사(沙)씨이며 명(明)나
라 만력(萬曆)3년(1575)에 태어나서 생후 7개월 만에 어머니를 여의
었다.16세에 출가할 뜻을 굳히고 금릉(金陵)와관사(瓦棺寺)에 가서
법화경(法華經) 강설을 듣다가,구하는 것이 문자에 있지 않고 자신
에게 있음을 깊이 느끼고서는 오대산의 정안(靜安)통법사(通法師)를
찾아 출가하였다.통법사는 지자(智者)의 지관(止觀)을 익히게 하니 5
년 동안을 매우 열심히 수행하였다.20세에 초화산(超華山)에 가서 극
암 홍(極庵洪)스님에게서 비구계를 받았다.이때 아봉(峨峯)에서 조동
종지(曹洞宗旨)를 펴고 있던 무명 혜경(無明慧經)선사의 명성을 듣고
찾아갔다가 호미를 어깨에 메고 삿갓을 쓴 농부 모습의 선사를 보고
서 문득 의심이 생겨 광택(光澤)으로 들어가 백운봉(白雲峯)에서 3년을
지냈다.그곳에서 심경지남(心經指南) 을 지어 스님께 바쳤으나 인가
받지 못하고서 드디어 종승(宗乘)에 더욱 정진하였다.
그리하여 ‘선자몰종적(船子沒踪跡)’화두에 의정이 문득 일어났고
전등록(傳燈錄)을 보다가 ‘조주유불무불(趙州有佛無佛)’화두에 깨우
친 바 있으나 인가받지는 못하였다.
그 후 혜경스님을 따라서 보방사(寶方寺)로 옮겨서 먹는 것도 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