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 - 선림고경총서 - 09 - 오가정종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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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정종찬(五家正宗贊)서(序)
성인의 문 안에서 노닒은 말로 하기 어렵다.더구나 이 글은
규중의 아녀자가 하늘거리는 다홍치마를 입고 조마조마하면서 땅
을 디디는 정도의 이야기일 뿐이니 어찌 참선하는 이의 법이 될
수 있겠는가.
납승의 집안은 숱한 성인의 이마 위에 앉아 눈 깜짝할 사이에
현묘한 추기(樞機)를 돌려 쇠로 된 얼굴을 뒤집는 것이다.이 늙은
이야 그런 경지를 모르지만 기연 하나를 드러내면 마치 큰 불더
미 같고,한마디 말을 꺼내면 마치 무쇠말뚝 같아서 우리들은 가
까이 갈 수도 없는 곳이며 씹어 맛 볼 수도 없는 것이다.그리하
여 고금 사람들에게 침을 놓고 뜸을 떠서 꼼짝없이 죽을 사람도
살려놓으니,이밖에 다시 누구를 성인이라 할 것이며 어느 문하에
서 배울 것이며 무슨 말을 꺼릴 게 있겠는가.하루종일 말을 해도
마디마디가 모두 도이며,천하에 말이 꽉 차도록 해도 입에 허물
이 없다.상을 주거나 벌을 주거나 내리깎거나 치켜올림에 모두
깊은 뜻이 있어서 상을 주더라도 지조를 권장함이 아니고 벌을
주더라도 궁지로 몰아넣음이 아니며,내리깎거나 치켜올림도 권선
징악의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다.얼굴의 문신을 잘라내어 코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