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 - 선림고경총서 - 09 - 오가정종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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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는 죄인에게 붙여 주고 학의 긴 다리를 오리의 짧은 다리에 이어

            주며 무엇을 어찌하든 하나하나 몸을 빼내는 길이 있는 것이다.
            이런데도 새장과 우리에 갇혀 타고난 운명이라 달갑게 여기는 얄
            팍한 장부가 되려 하는가.
               나는 천성이 둔한 사람이라 메마른 지팡이에 달을 걸고 헤진

            삿갓에 흰구름을 담아 강호를 떠돌아다닌 지 거의 50년이다.내
            비록 도의 관문을 꿰뚫는 안목이 그리 밝지는 못하고 지극한 이

            치를 전하는 말이 그리 분명하지는 못하지만 옛사람이 흡족하다
            할 만한 경지가 아닌 곳은 조금이나마 엿보아 온 터이다.이제 오
            색 붓을 들어 허공에 수를 놓아 볼까 하는데,이는 아마 나의 힘

            을 헤아려 보지 못한 일일 것이다.
               앞서 말한 상주고 벌주고 내리깎고 치켜올리는 일은 앞으로

            금도끼로 안막(眼膜)을 긁어내고 말을 꺼내면 숱한 이를 놀라게
            할 사람을 기다려 다시 밝혀야 할 것이다.그렇다 하더라도 내 눈
            썹이 빠지는 것이야 어떻게 면할 수 있겠는가.



               보우(寶祐)갑인(1254)서촉(西蜀)의 비구 소담(紹曇)은
               백 번 절을 올리고 영취방산실(靈鷲放山室)에서 이를 쓰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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