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 - 선림고경총서 - 31 - 원오심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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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오선사가 살았던 시대는 11C중~12C중,거란․여진 등 이민족의
침탈과 내정의 실패로 송(宋)왕조가 위기에 처한 때였다.특히 왕안석
(王安石)의 개혁의지(1069)가 실패로 돌아가고 나서 정책대결로서의 신법
(新法)․구법(舊法)의 대립이 아닌,인맥만 남은 신당․구당 세력이 쟁점
없는 싸움을 거듭하던 시기였다.
그런 가운데도 건국 초부터 역대 왕들의 귀의를 받아 오던 불교는 국
가권력의 보호 아래 대토지를 소유하고 귀족들과 교류하면서 어느 만큼
은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특히 정강의 변(靖康之變:1127)후에 정치
무대가 강남(江南)으로 옮겨지면서 원래 전 시대 충의왕(忠懿王)전숙(錢
俶)의 노력에 의해 불교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던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불교는 새로운 발전의 시대를 맞이한다.이때 불교는 선(禪),정토(淨土),
천태(天台)가 주된 흐름을 이루고 있는데,이 중 사천(四川)출신 승려가
다수를 차지했던 임제종 양기파 선승들이 장상영(張商英),소식(蘇軾)등
사천 출신 고위관직층의 귀의를 얻으며 강남불교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임제종 선승들은 선불교 중흥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보였는데 그런
중에도 그때까지 내려오던 선 참구법에 대해서 보다 조직적인 설명체계
를 세우는 작업을 하였다.원오선사의 몇 가지 저술들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대표적인 예이다.공안참구의 체계화는 오조 법연에서 본격화되었
다고 보겠는데,그는 ‘무’자 공안을 참구토록 강조하였다.
원오 근선사의 특징은 여러 조사들의 공안과 기연 언구들을 매 편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