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 - 선림고경총서 - 36 - 벽암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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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를 이룬 것이다.
선 사상사로 보더라도 돈오견성을 부르짖는 육조단경 의 사상과,철
저한 자기 주체성을 강조하는 선사들의 정신이 벽암록 에 집약되어 있
다.“기봉이 단계적인 지위를 벗어나지 못하면 독바다에 떨어진다”라든
가,“남으로부터 얻은 보물은 자기의 보물이 아니다”라는 옛 조사들의
말을 원오스님은 누누이 인용하고 있다.
원오스님은 팽주 숭녕(彭州崇寧:사천성 성도)출신으로 자(字)는 무
착(無着)이고 극근은 스님의 휘(諱)이다.생전에는 북송의 휘종 임금이 불
과(佛果)라는 법호를,사후에는 남송의 고종 임금이 원오라는 법호를 내
렸다.어려서 출가하여 뒷날 오조 법연(五祖法演:?~1104)스님의 법을
이어 임제의 가풍을 날렸으니,문하에는 항상 천여 명의 납자가 있었으
며 그 중 대혜 종고(大慧宗杲)와 호구 소륭(虎丘韶隆)스님이 유명하다.
당시의 한림학사 곽지장(郭知章)과 재상 장상영(張商英)의 귀의를 받아
여러 관사(官寺)에서 종풍을 선양하던 중 성도의 소각사(昭覺寺),호남의
협산사(夾山寺)와 도림사(道林寺)등지에서 설두송고 를 제창하여 벽
암록 으로 오늘에 전하고 있다.‘벽암’은 협산(夾山)영천원(靈泉院)에 있
는 한 건물의 편액에 있는 글자이다.스님의 법어는 제자들에 의해 ‘어
록’과 ‘심요’로 편집되어 오늘에 전해지고 있다.
벽암록 의 텍스트와 그 계통은 매우 복잡한데,여기서는 이 책의 대
본이 된 삼성출판박물관 소장본(이하 삼성본으로 약칭)을 중심으로 간단
히 설명하기로 한다.선화(宣和)7년(1125)에 쓴 무당(無黨)스님의 후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