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 - 선림고경총서 - 36 - 벽암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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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칭호와 함께 선서(禪書)의 왕좌를 차지하게 되었다.이 책은 설두스
님이 하신 [본칙]․[송]과 원오스님이 하신 [수시]․[평창]․[착어]로 구
성되어 있다.[수시]는 법문에 들어가기 전에 한 일종의 문제제기이고,
[ 평창]은 [본칙]과 [송]에 대한 설명이고,[착어]는 한두 마디로 상대를 격
발시키는 간단한 평가이다.
그러나 원오스님의 제창은 단순한 글자 해석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스님 자신의 전인격이 투여되어 있다.특히 말이나 문헌에 대한 집착을
끊어주기 위하여 당시의 구어와 속어를 종횡무진하게 사용하여 수행자들
을 일깨워 주고 있다.이러한 원오스님의 생생하고 발랄한 강의의 모습
은 그의 훌륭한 기록자들에 의해 그 몸짓마저도 전해지고 있다.설두스
님이 표전(表전)의 논리로 본분의 소식을 알린 반면,원오스님은 차전(遮
전)의 방식으로 일체의 사량분별을 뛰어넘어 자기의 본래면목을 단박에
깨치도록 하였다.“ 벽암록 을 읽으면 모든 알음알이가 딱 끊어진다”고
한 성철스님의 평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벽암록 은 문학적으로도 매우 밀도 있게 완성되어,중당 이후
의 문단(文壇)의 중심적인 사조인 돈오무심(頓悟無心)사상이 유감없이
발휘되어 있다.더구나 송대의 창랑시화(滄浪詩話) 등의 시평어집에서
당대(唐代)에 유행하던 돈오돈수 사상을 근거로 당시(唐詩)를 평한 것을
상기할 때에 벽암록 이 갖는 불교문학사적 위치는 대단히 크다.순간적
으로 포착된 느낌을 압축된 언어로 정착시켜야만 하는 시인의 긴장감이
일체의 사량분별이나 점진적인 단계를 철저히 거부하는 선사의 삶과 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