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 - 선림고경총서 - 36 - 벽암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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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11
의하면,원오스님이 성도에서 설두송고 를 제창했다고 한다.그 후 협
산․도림에서도 또다시 제창하였는데 그때마다 말씀은 조금씩 달랐으나
그 뜻은 같았다고 한다.그런데 건염(建炎)2년(1128)에 씌인 보조스님의
서에 의하면 협산 영천원의 벽암에 주석하시던 중 제창하신 것으로 되어
있으므로 모순이다.아마도 성도 강의록과 협산 강의록이 필사본의 형태
로 둘 다 유행되었던 것 같다.그러다가 뒷날 여러 다른 종류의 판본으
로 정착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삼성본 벽암록 은 조선조 세조 11년(1465)에 제작한 을유자(乙酉
字:중간 크기의 동활자)로 찍은 책이다.이 책은 ① 보조의 서,② 만
리방회의 서,③ 삼교노인의 서,④ 주치의 서의 순으로 서가 붙어 있다.
그리고 ① 무당의 후서,② 희릉의 후서,③ 정일의 후서,④ 풍자진의
후서,⑤ 중간원오선사벽암집소 순으로 후서가 붙어 있다.이 후서 중
② ③ ④에 모두 장명원의 재판(再版)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삼성본은 장명원본 계통을 저본으로 하여 활자화된 것으로 생각된다.그
리고 가흥장속장본과 건륭장경본의 권제10뒤에 북판(北版) 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한 대목이 있는데,삼성본도 북판 의 오류를 그대로 담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장명원본 계통 중에서도 북판 과 같은 계통으로
생각된다.
한편 이 삼성본은 각 칙의 내용을 표시하는 제목이 없고,각 칙의 본
칙의 첫머리에 번호가 붙어 있고,권제1끝에 ‘협산무애선사항마표’가 없
는 점 등이 중국의 명본(明本),가흥장속장본,건륭장본,대청광서본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