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7 - 고경 - 2015년 2월호 Vol.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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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스님의 화두 참선 이야기
쇠퇴하였습니다. 이에 고려의 뜻있는 스님들은 현실을 개탄
하고 승단을 쇄신하기 위해 수행결사를 추진하게 됩니다.
고려시대 간화선의 전래 고려시대 정혜결사의 주역 보조(普照, 1158~1210) 스님은
지리산 상무주암에서 간화선을 창시한 대혜 스님의 어록을
보고 눈이 열렸다고 합니다. 이 근거로 볼 때 한반도에서 간
화선을 처음 접한 분은 보조 스님입니다. 보조 스님이 주도
_ 정리 박희승
한 정혜결사는 간화선으로 승풍을 쇄신하는 결사운동이었
고, 이 결사는 보조 스님 입적 뒤에 2세 법주 진각 국사로
계승되어 무려 16국사(國師)가 배출됩니다.
보조 스님은 여러 저서를 남겼는데 초기 저술인 『정혜결
간화선을 수용한 보조 국사 사문』과 『수심결』에서는 조사선의 회광반조 공부법과 돈오
불교가 한반도에 전해진 것은 삼국시대이고 통일신라 후 점수(頓悟漸修)를 주장하였습니다. 하지만, 입적하고 6년이
기 (821년)에 도의 스님이 조사선을 전하여 구산선문이 세워 지나 발견된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에는 간화선의 입장에
집니다. 혼란한 후삼국시대를 통일하여 고려를 세운 태조 왕 서 돈오돈수(頓悟頓修)가 선문의 바른 견해라고 하였습니다.
건은 불교를 국교로 삼아 고려시대는 찬란한 불교 정신과 이 때문에 보조 국사 초년의 돈오점수설과 사후 유작인 『간
문화를 창달합니다. 화결의론』에 담긴 돈오돈수 입장의 차이로 혼란이 있습니다.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울듯 세상 만물은 모두 흥하면 쇠하 다수의 학자들은 초기 저작을 보조 스님의 사상으로 보고
는 법입니다. 고려시대에 불교 승단은 많은 시주로 사찰 경 말년의 저작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철 스님
제가 풍족해져 스님들이 사치와 향락에 젖어들어 승풍이 은 『백일법문』에서 보조 스님이 젊은 시절의 잘못된 견해를
노년에 바로잡은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평하고 있습니다.
「고경」에서는 ‘고우 스님의 화두 참선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고우 스님은 출
『선문염송』을 편찬한 진각 국사
가 후 평생 선원에서 정진해 오셨으며, 지금도 참선 대중화를 위해 진력하고
계십니다. 화두 참선의 의미와 방법, 그리고 효과에 이르기까지 고우 스님이 보조 스님이 간화선을 한반도에 소개하였다면, 이를 전파
직접 경험한 내용을 독자 여러분들께 전해 드리고자 합니다. - 편집자
한 분이 진각혜심 (眞覺慧諶, 1178~1234) 스님입니다. 보조 국
24 고경 2015.02.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