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0 - 고경 - 2015년 2월호 Vol.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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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법문 다시 보기
징적 표현이다. 그 배의 크기에 따라 대승이나 소승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대승(大乘)이란 함께 타고 가는 큰 배라는 뜻
삼승과 일불승 그리고 다승 인 반면 소승(小乘)은 자기 혼자만 타고 가는 작은 배라는
뜻이다. 물론 소승이라는 이름은 대승에서 동체대비의 정
신을 강조하고, 자기 수행에 치중하는 부파불교를 비판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다.
_ 서재영
‘승’이라는 말은 대승과 소승이라는 구분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 천승(天乘), 인승(人乘) 등과
같이 오승(五乘)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하지만 대표적인 것
이 삼승(三乘)이라는 개념이다. 대승과 소승이 피안으로 가
는 배의 크기에 관한 것이라면, 삼승은 배의 성격에 따른 구
분으로 다음과 같다.
고해를 건너가는 배
절에서 망자를 천도할 때 반야용선이라는 배가 등장한다. 피안으로 가는 세 가지 배
지혜의 배를 타고 고해를 건너 피안으로 가라는 염원의 표 첫째는 성문승(聲聞乘)이다. 글자의 의미로 보면 ‘소리 들
현이다. 이처럼 종교는 피안으로 건너가는 뗏목이나 배로 상 음의 배’라는 뜻이다. 원래 성문이란 부처님 당시의 제자들
징되기도 한다. 대승이니 소승이니 하는 말이 바로 불교를 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의
배로 표현하는 것이다. ‘승(乘)’이란 범어 ‘야나(Yāna)’에서 온 번뇌를 내려놓고 참다운 진리를 깨달은 제자들이다. 이들을
것으로 배나 수레와 같은 ‘탈 것’을 뜻한다. 중생이 사는 세 피안으로 건너가게 하는 것은 부처님의 음성이다. 따라서 성
상이 번뇌와 고통으로 가득 찬 세계라면 고해의 저편에는 문은 진리의 음성이라는 배를 타고 고해를 건너 피안으로
열반의 세계가 있다. 간다.
고해의 저편에 있는 피안(彼岸)의 세계로 건너가기 위해 그런데 대승불교가 일어나고, 중생제도를 근본으로 삼는
타는 배가 대승이니 소승이니 하는 ‘승’이다. 따라서 승이란 보살이 부각됨에 따라 성문은 소승으로 분류되었다. 물론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가르침이나 수행법에 대한 상 성문들도 사성제의 진리를 깨달아 완전한 열반에 이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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