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4 - 고경 - 2015년 5월호 Vol.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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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암사결사 대중들은 오직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정신                                     승들은 토지 몰수 보상금을 자신들의 살림살이에 사용하고

          으로 ‘공주규약(共住規約)’을 중심으로 매일 참선하고 운력하                                    선원에는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선승들은 반발하지 않
          며, 승가의 위의를 세우고자 보조 스님의 장삼을 본떠 장삼                                     을 수 없었습니다.
          과 가사를 새롭게 하는 등 철저히 정진하였습니다. 이 결사                                       그리하여 1954년에 선승들은 선학원에 모여 정화결의대
          소식은 널리 알려져 많은 스님들이 봉암사에 왔으나 방사                                       회를 열고 ‘불법 (佛法)에는 대처 없다’는 대의로 정화운동을
          부족과 결사 규약의 삼엄함을 보고는 돌아갈 정도였답니다.                                      시작합니다. 당시 교단에 승적을 가진 1만여 승려들의 절대

            그러나 봉암사결사는 1950년 전쟁의 발발로 중단되고 말                                    다수는 대처승들이었습니다. 부처님의 계율을 지킨 비구승
          았습니다. 하지만, 결사 정신은 전쟁이 끝나고 1954년에 본                                   들은 대부분 참선하는 스님들이었는데, 인원은 1,000여 명
          격화된 승단정화의 정신적인 기반이 되었고, 1962년에 출범                                    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선승들은 오로지 부처님 법에

          한 대한불교조계종의 사상문화적인 뿌리가 되었습니다. 즉,                                      맞게 교단이 운영되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정화운동을 강력
          이 결사에 참가했던 스님 중에 청담, 성철, 혜암, 법전 스님                                   히 추진하였습니다.
          은 종정이 되었고, 월산, 자운, 지관 스님 등은 총무원장 소                                     이와 같이 소수의 비구 선승들의 강력한 정화운동은 정
          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지금 조계종 스님들의 가사와 장삼도                                     부당국과 언론, 그리고 국민의 지지를 받아 마침내 1960년
          봉암사 결사에서 정한 것이고, 화두 참선을 중심으로 하는                                      에 이르면 전국 주요 사찰은 비구 선승들이 운영권을 확보

          수행 종풍의 정착, 보살계 수계식 등도 결사의 정신이 반영                                     하게 되어 사실상 교단 정화가 성취됩니다.
          된 전통이라 하겠습니다.                                                          1961년 군사정변으로 집권한 정권은 비구-대처 양쪽 대
                                                                               표들에게 통합을 권고하여 마침내 양쪽이 이에 호응하여

            승단 정화운동과 대한불교조계종의 출범                                               통합종단 대한불교조계종이 출범합니다. 이것이 지금 조계
            1945년 광복 이후 남북 분단과 정치적인 대립은 극에 달                                   종입니다. 이리하여 한국불교의 1700년 역사와 전통은 대
          했고, 급기야 1950년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전쟁은 엄청난                                    한불교조계종이 계승하여 오늘날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종
          고통을 가져왔습니다. 사찰에도 큰 피해를 주어 선원 유지                                      단으로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 어려워졌습니다.                                                             이 땅에 부처님의 가르침이 전해진 것은 1700년이나 되

            여기에 1949년 농지개혁법이 시행되어 사찰의 토지가 유                                    고, 조사선이 전해진 것은 통일신라시대였습니다. 그 뒤 구
          상몰수되어 경제적 기반이 더 약화됩니다. 특히 당시 대처                                      산선문이 성립되고 고려시대에 이르면 간화선이 도입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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