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 - 고경 - 2015년 5월호 Vol.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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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재건과 봉암사 결사운동

            1935년 무렵에 조선불교도들은 일본불교계가 총독부와
          협잡하여 조선불교를 자기들이 장악하려는 음모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에 항일운동가 출신의 월정사 지암 스님이
          중심이 되어 이를 저지하고 조선불교를 대표하는 총본산 건
          설과 교단 재건을 추진합니다.

            1937년부터 총본산 건설이 본격화되어 전국 본말사에서
          건립비를 모으고, 각황사 옆 보성학교를 인수하여 1938년
          10월에 조선불교 총본산 법당을 건립하였습니다. 지금의 조

          계사 대웅전이 바로 이때 세운 것입니다.
            조선불교 총본산 건립에 성공하자 이 운동을 전개한 지
          도자들은 조선불교를 총괄하는 교단 재건을 원하였습니다.                                                           봉암사결사 당시 성철 스님이 직접 작성한 공주규약
          이에 총독부를 설득하여 1941년 조선불교조계종을 재건하
          게 됩니다. ‘조계종(曹溪宗)’이란 종명은 선종의 6조 조계혜능                                  로 결사운동을 추진한 스님들이 있었는데, 이것이 저 유명

          대사에서 유래한 것인데, 중국과 일본에 없고 오직 고려시대                                     한 봉암사결사입니다. 성철, 자운, 보문, 우봉 이렇게 단 네
          부터 우리나라에만 전해오는 종명이었습니다. 이리하여 조                                       명 스님이 시작한 결사에는 곧 이어 청담 스님이 합류하였습
          선조 억불정책으로 교단이 강제 해산된 이후 수백 년 만에                                      니다. 그 뒤로 향곡, 월산, 종수 스님과 젊은 사람으로 도우,

          교단이 재건되었습니다. 이때 조계종의 초대 종정으로는 경                                      법전, 성수, 혜암 스님 등 해서 20여 명으로 늘었고, 비구니
          허 스님과 함께 해인사에서 결사한 한암 스님을 추대합니다.                                     묘엄 스님 등은 백련암에서 참여하였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항복하고 우리나라는 새 시대를                                    결사(結社)는 불교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부처님의 가르침
          맞습니다. 그런데 당시 교단과 주요 사찰의 책임을 맡고 있                                     대로 살자는 종교운동입니다. 일찍이 중국에 백련결사가 있
          던 스님들은 대부분 대처승이었습니다. 이것은 일제 식민지                                      었고, 고려시대 보조 국사의 수선결사 그리고, 근세에 1899

          정책의 잔재입니다.                                                           년 경허 선사의 해인사 수선결사, 용성 스님의 만일참선결사
            이러한 상황에서 1947년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정신으                                   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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