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7 - 고경 - 2015년 5월호 Vol.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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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의 근거라고 믿는 마음도 실체가 없기에 ‘무아(無我)’
이다. 마음이라는 것도 인연 따라 만들어진 인식이기 때문
이다. 결국 욕망이나 번뇌도 내 속에 본래부터 있었던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자성은 본래 청정하다
그렇다면 욕망은 ‘나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일까? 인식은
감각기관과 객관과의 관계 속에서 생성하는 것이므로 나와
무관하게 밖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어떤 사람은 루이뷔
통 백을 보고 욕망하지만 어떤 사람은 아무런 욕망도 일으
키지 않는다. 만약 욕망이 밖에 있는 것이라면 욕망의 대상
을 보는 모든 사람은 동일한 욕망을 일으켜야 하지만 실상
은 그렇지 않다.
이렇게 욕망이나 번뇌가 본래부터 내 속에 내재하지 않
으며 그 본성이 깨끗한 것을 ‘청정 (淸淨)’이라고 한다. 그리고
욕망이나 번뇌는 감각기관이 객관대상을 만나서 생겨나는
것이므로 이를 ‘수번뇌 (隨煩惱)’라고 한다. 대상이라는 조건
에 따라 발생한 번뇌라는 뜻이다.
『남전대장경』 ‘증지부’에는 “비구들아, 이 마음은 극히 청
정하고 빛난다. 그러나 이것은 객 (客)의 수번뇌에 물들었다.”
라고 설해져 있다. 인간의 본성은 본래 맑고 깨끗한데 밖에
서 들어온 번뇌에 오염되어 맑고 깨끗한 성품이 빛을 잃었
다는 것이다. 마치 하늘은 유리알처럼 투명한데 먹구름에
가려 태양의 빛이 보이지 않는 이치와 같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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