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 - 고경 - 2015년 5월호 Vol.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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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라.”는 큰스님의 당부 말씀이 있어서 백련암에서는 연등 참가하고 연등축제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던 기억입니다.
행사가 없었고 지금까지도 백련암은 초파일 등 없이 적막하 그 뒤 세월이 흘러서 1999년 1월에 고산 큰스님을 총무
게 보내고 있습니다. 원장으로 모시고 총무부장 소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업무보
어느 해인가, 여의도 연등축제에 참가했습니다. 초파일 연 고를 받는 자리에서 연등축제행사를 주관하는 봉축위원회
등행사를 마치고 여의도부터 조계사까지 제등행렬이 있었 가 있는데, 바로 총무부장이 책임자라고 했습니다. 담당자
습니다. 선두그룹이 출발하고 나서 한참 지나 제가 속한 그 가 “연등축제 준비는 지금부터 서둘러야 합니다.”라고 했습
룹의 출발 차례가 되었습니다. 마포대교를 지나고 아현동 고 니다. “봉축위원회 사무실에 곧 들를 것이니 그때 자세한 이
가 차도까지 오는 동안 환하던 가로등도 희미해지고 대오는 야기를 들읍시다.”고 했는데 예전에 제등행렬에서 뵀던 석주
점차 흩어져 사람들은 삼삼오오 제등행렬을 따랐습니다. 이 큰스님의 모습과 성철 큰스님 다비식 때의 전경이 머릿속에
렇다 보니 축제분위기는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종근당 떠올랐습니다.
앞을 지나고 서대문 네거리를 지나니 몸은 지칠 대로 지쳐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큰스님 다비식 때의 모습은 해
가고 있는데 제 앞에 어느 노스님께서 연등을 들고 휘적휘 인사IC에서부터 차가 밀려 30여 리의 길을 걸어 걸어 다비장
적 걸어가고 계셨습니다. 다시 힘을 내어 걸어가며 “어떤 노 으로 와야 하는 기나긴 행렬과 수십 만의 인파를 다비장에
스님께서 이 긴 제등행렬의 길을 걸어가실까?”하는 의심이 서 지켜보는 저는 감동과 긴장과 안전사고에 대한 걱정으로
들면서 대단한 신심이시라는 생각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 하루를 보냈습니다. 무사히 다비식을 마친 후 오라고 강제한
습니다. 저도 힘을 내 빠른 걸음으로 그 노스님 뒤를 좇았습 일도 없는데 떠나시는 스님을 애도하려고 자발적으로 밀려드
니다. 다가가서 그 노스님을 뵈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원 는 그 많은 군중들 자체가 큰스님에 대한, 불교에 대한 크나
로의원으로 계시며 모든 이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으시던 큰 애정임을 통감한 감정은 지금도 가슴을 감동케 합니다.
석주 큰스님이셨습니다. “큰스님! 저는 백련암의 아무개 중 봉축위원회에 가서 여러 가지 보고와 준비 상황 등을 듣
입니다. 어떻게 큰스님께서 몸소 걸으셔서 여기까지 오셨습 고 난 후 질문했습니다. “제등행렬 할 때 연도에 불자들이
니까?”고 감격스러운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래! 백련암 스 얼마나 나와 축하합니까?” “전에는 여의도에서 조계사까지
님께서는 잘 계시는가? 나야 정정하니 대중과 함께 걸어야 제등행렬을 했습니다. 그 길이 너무 멀고 산만하다는 의견이
지. 이제 다 왔잖아. 허허.” 저만치 광화문 로터리가 눈에 들 있어서 월주 큰스님이 총무원장을 하실 때 총무국장이던 지
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여의도에서 조계사까지의 제등행렬에 현 스님이 주장하셔서 최근에는 동대문운동장에서 조계사
4 고경 2015.05.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