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2 - 고경 - 2015년 5월호 Vol.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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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커 성능이 너무 좋아서 고막이 터질 것 같았다. 저 스피 스의 전승비 앞에 아직도 사열하는 군국주의자들의 행진
커, 얼마 주고 구입했을까. 또 의분에천이 속에서 올라왔다. 들, 수탈당하는 이민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의 양태들, 돈
소리가 괴롭고 배도 고프고 화장실도 가고 싶고 겁도 나고 을 숭상하며 주식거래장 앞으로 모여드는 군중들. 그러나
해서 슬금슬금 자리를 피해서 시위현장을 나왔다. 나오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파리 사람들에게 5월은 그렇게
서, 나는 뭐하는 인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식되지 않았다. 그들은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이상기온
이 나라가 후지다고 생각했던 젊은 날, 시민의 힘으로 왕 을 꼽았고, 알제리에 대해서는 국수주의적 적대를 보였으
정을 끝장낸 프랑스를 부러워했다. 그러나 그 뒤에 알게 된 며, 여성들은 정치를 남성의 전유물로 여겼다. 행복의 조
61년 가을 파리에서 있었던 알제리인 학살은 프랑스에 대한 건으로 돈을 꼽았고, 직면한 문제로는 연애와 결혼, 휴가
환상을 깨기에 충분했다. 이 사건이 일어난 다음 해 봄에 한 에 관한 것을 언급했다.
감독이 파리 시내에서 마주친 시민들을 인터뷰해서 만든 크리스 마르케는 제국 프랑스, 근대적 자본주의 프랑스
다큐멘터리가 있는데 오늘의 광화문을 떠올릴 때 머릿속에 의 지배와 정치가 어떻게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저절로 재생되는 필름이다. 제목이 ‘아름다운 5월’이다. 감독 의 삶과 욕망 속에 관철되어지는가를 들여다본다. 미시적
크리스 마르케가 2012년에 91세로 별세하여 이 영화가 다 일상에 갇힌 사람들. 지배 논리와 권력의 그물망 속에서
시 조명을 받은 일이 있다. 전문가의 평을 들어 보자. 자유롭지 못한 군중들. 그러나 스스로 정당하다고 믿는
사람들.
영화가 시작되면 파리의 아름다운 전경들이 펼쳐진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 파리의 곳곳을 포착하던 카메라
공중과 첨탑 등에서 부감으로 촬영된 멋진 풍경! 우리가 는 이윽고 파리의 감옥으로 향한다. 높은 담장과 팔각형
익히 알고 있는 파리. 그리고 울려나오는 이브 몽땅의 고 의 건물은 방향감각을 상실케 하고, 발걸음을 앞으로 나
혹적인 목소리. “확인하고 싶었다. 이곳이 가장 아름다운 아가지 못하게 하며, 서로에 대한 증오와 적대를 키워나간
도시인가?” 크리스 마르케의 영화 <아름다운 5월>은 이렇 다. (중략) 무언가 잔뜩 화가 난 얼굴들, 불안과 의심으로
게 시작된다. (중략) 가득 찬 얼굴들.
61년 10월 파리에서 자행된 알제리인 대량 학살(이때 희 이어지는 이 영화의 가장 아름다운 나레이션. “슬픔
생당한 알제리인 200여 명은 시신조차 수습되지 못한 채 세느강에 이 있는 곳에 행복이 있을 수 없다. 가난한 자가 있는 곳
던져졌다)에 대한 지식인의 죄의식과 트라우마, 제국 프랑 에 부자가 있을 수 없다. 감옥이 있는 곳에 자유가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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