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 - 고경 - 2015년 7월호 Vol.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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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자, 자선사업가가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핵 장이다.”며 부지런히 참구할 것을 당부했다.
폭탄 같은 사람이 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데 기 화두를 받고 보니 모든 일은 후순위가 되어버렸다. 오직
여하겠다.” 백졸 스님은 다짐했다. 화두만을 붙잡기 위해 발버둥 쳤다. 4층에 있던 방에 홀로
스님은 다시 성철 스님을 만나러 파계사 성전암으로 갔다. 앉아 있으니 전차 지나가는 소리, 사람들 오가는 소리, 동생
성철 스님에게 ‘영원한 자유’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여쭈었다. 들 뛰어 노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화두에 집중을 할 수 없
“한 가지만 하면 된다. 참 좋은 것이 있데이. 알고 싶나?” 었다.
“네.” 그래서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결론은
“니 그럼 등록금 내라!” ‘가출’ (?)이었다. 1956년, 스님은 부모님께 일주일만 절에 가
“네. 내겠습니다.” 서 공부하겠다고 말씀을 드리고 해인사 청량사로 갔다. 청량
“그란데 그 돈은 한국은행권이 아니야!” 사에서 친구 불필 스님을 만났다. 공부를 하다 보니 일주일
스님은 삼천배를 하고 오라는 말씀임을 알아차렸다. 몇 이 한 달이 되고 또 3개월이 훌쩍 지나버렸다. 일주일만 공
번의 실패 끝에 스님은 삼천배를 하고 ‘삼서근(麻三斤)’ 화두 부하고 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스님은 다시 거처를
를 받았다. 성철 스님은 “이 화두를 놓치면 살아 있어도 송 옮겼다. 그렇게 태백산 홍제암, 대승사 묘적암과 윤필암, 석
남사 등으로 다니며 공부를 했다. 그 사이 시간은 벌써 2년
이 흘러버렸다.
“공부가 생각만큼 안 됐어요. 그래서 ‘장기전’을 생각했습
니다. 결국 큰스님께 출가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성철 스님은 스님에게 ‘백졸(百拙)’이라는 법명과 함께 게
송을 내렸다.
住在千峯最上層(주재천봉최상층)
年將耳順任騰騰(연장이순임등등)
免敎名字掛人齒(면교명자괘인치)
백졸 스님의 속가 부모님이 기증한 천초탕 자리에 세워진 고심정사 今朝甘作百拙僧(금조감조백졸승)
20 고경 2015.07.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