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7 - 고경 - 2015년 7월호 Vol.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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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척도로 사람을 바라보는 순간 인간의 목적적 가치는 설 땅

          을 잃고 만다.
 불성과 중도     존재를 바라보는 이와 같은 도구적 가치관은 단지 인간에

          게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존재
 _  서재영
          는 도구적 유용성이라는 척도에 의해서 그 가치를 평가받는
          다. 인간을 비롯한 존재의 가치는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내재적인 것이 아니라 돈으로 환산되는 양만큼만 부여된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인간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투쟁해야 하며, 스스로

 도구적 가치와 불성을 가진 존재  온갖 사회적 기호를 덧칠하여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얼마 전 천재 수학소녀가 탄생했다는 뉴스가 대서특필된   는 강박증에 시달리게 된다.
 적이 있다. 미국의 한 명문 고등학교에 다니는 한국계 여고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성이 무력화된 시대에 우리들에게
 생이 하버드대와 스탠퍼드대 등에 합격했고, 두 대학의 간청  정신적 위안과 안도감을 주는 가르침이 바로 불성론이다.
 으로 이들 대학을 동시에 다니게 됐다는 뉴스였다. 하지만   『대반열반경』에서는 “일체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고

 이는 오래지 않아 거짓으로 판명 났다. 명문대학 진학에 대  설하고 있다. 목적적 가치의 해체, 인간 존엄성의 실종으로
 한 압박감에 스스로 꾸며낸 이야기라는 것이다.  인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 하는 우
 장래가 촉망되는 꿈 많은 소녀가 왜 그런 일을 저질렀을  리들에게 이 가르침은 정신적 위안이 됨은 물론 도덕적 척

 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주된 이유는   도로 삼기에 충분하다.
 사람이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는 세태가 작용했을 것이다.   해석하기에 따라 이 가르침에는 다양한 의미가 내포되어
 오늘날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그가 지닌 학벌과 스펙, 직장과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누구나 깨달
 연봉에 따라 달라진다. 사람 자체가 아니라 그가 지닌 조건  음을 얻을 수 있고 성불할 수 있다는 종교적 의미이고, 둘째
 에 의해 사람에 대한 평가를 달리하는 이런 세태는 인간에   모든 인간이 부처님과 같은 위대한 성품을 지니고 있다는

 대한 보편적 존엄성과 평등성을 해체시킨다. 외모, 학벌, 연  인간존엄에 대한 증언이다. 따라서 불성사상은 교리적으로
 봉, 사회적 지위 등이 사람을 평가하는 기호가 되고, 그런   도 중요하지만 가치 상실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도 더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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