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1 - 고경 - 2015년 7월호 Vol.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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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실체적 존재’로 불성을 이해하게 된다.  “불성은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며 [非內非外], 또한 안이

 이상과 같은 사유방식은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는   고 또한 밖이므로[亦內亦外] 이것을 중도라고 한다. … 중
 진술이 갖고 있는 본래의 의미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기보다   생의 불성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非有非
 ‘있음’과 ‘없음’이라는 대립적 개념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관  無], 또한 있기도 하고 또한 없기도 하다[亦有亦無].”
 점으로 불성을 보면 ‘불성이 있다’는 말을 듣는 즉시 그 말
 에 집착하여 불교는 제법무아(諸法無我)를 설하므로 불성론  인간이 대상을 이해하는 방식은 ‘있다’와 ‘없다’는 이분법

 은 교리적으로 충돌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철 스님은   적 사유이다. 하지만 불성은 그와 같은 사유방식을 넘어서
 ‘없음’을 완전히 배제한 ‘실체로서의 불성’은 존재하지 않는  있다는 것이다. 즉 불성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없는
 다고 했다. 불성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단견 (斷見)이  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러면서 불성은 또한 있고 또한 없는

 나 영원불변의 실체로써 존재한다는 상견 (常見)에 빠지면 볼   것이라고 설명한다. 불성은 중생들이 세상을 이해하는 차별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와 같은 주장은 성철 스님의 독자  과 변견을 넘어서 있는 것이다. 불성에 대한 이와 같은 중도
 적인 해석이 아니라 경전에 근거한 말씀이다.  적 설명은 인간이 가진 이원적 사유패턴을 철저하게 무력
 『대반열반경』은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고 했지만 그  화시킨다. 만약 불성을 실재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실체론에
 것을 ‘있다’와 ‘없다’와 같은 이원적 범주로 설명하지 않는  빠져서 존재의 가치를 지킬 생각과 노력도 하지 않을 것이

 다. 우리가 기억하는 열반경의 말씀은 ‘모든 중생에게 불성  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불성은 본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
 이 있다’는 구절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기 때문이다. 반대로 불성 같은 것은 본래 없다고 이해하면
 있다는 진술에만 집착한다. 하지만 열반경에서 말하는 불성  허무주의에 떨어져서 정신적 공허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그

 은 ‘있다’거나 ‘없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불성을 중도적   와 같은 차별적 인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불성은 있는 것도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성철 스님 역시 이와 같은 교설에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중도로 설명된다.
 입각하여 “중생들은 모두 불성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있  『열반경』에서 말하는 ‘비유비무(非有非無)’는 있음도 부정
 는 것 [有]도 아니고 없는 것[無]도 아니며, 단절된 것[斷]도 아  하고, 없음도 부정하는 것이다. 있다거나 없다는 두 가지 극
 니고 항상 있는 것 [常]도 아니기에 중도”라고 설명한다. 물론   단적 사유를 부정하는 것을 쌍차(雙遮)라고 한다. 따라서 아

 『백일법문』의 이 내용은 『대반열반경』 32권에 나오는 다음  트만과 같은 실체화된 불성은 애초에 경전에서 설한 바 없
 과 같은 가르침에 대한 설명이다.  다. 실체화된 불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불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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