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3 - 고경 - 2015년 7월호 Vol.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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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나면 언제나 몸살이 난다. 다 버렸으면 좋겠는데 그러지
못해 세운 원칙이 하나 있다. 기억할 만한 사연이 있어 간직
했던 물건, 혹은 비싼 것부터 하나 버리고 시작한다. 애지중
지하던 것도 버렸는데 그 밖의 것은 이것쯤이야 하면서 미
련 없이 버리게 된다. 그러다 보면 한나절 만에 공간이 숨을
쉬고 나도 숨통이 트인다. 그러나 치우고 나면 그때 뿐, 어느
새 다시 쌓아놓기를 반복하는 고질병이 도진다.
잠시만 생각해 봐도 이 물건들이 다 필요해서 지니고 사
는 게 아니다. 단지 버리지 못할 뿐이다. 버리지 못해 쌓아
두고 사는 사람들 이야기를 TV에서 본 적이 있다. 주변 정
리도 못하고 생활 관리도 안 되는 사람들이고, 그중에는 우
울증을 겪는 사례도 종종 있다. 도우미 팀이 출동하여 번개 강박증 친구가 있으면 도움이 된다는 걸 그때 알았다.
같이 정리해주는 것을 보고 나도 방송국에 사연 한 번 보내 그 뒤에 대대적으로 짐을 정리할 일이 있었다. 집을 새로
볼까 했었다. 도움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어느 날 짓기 위해 몇 달 동안 살 집으로 이사를 갈 때였다. 몇 십 년
김치 갖다 주러 온 동네 친구가 김치를 놓고 사라지더니 금 을 쓰던 물건들이 집 곳곳에서 나왔다. 좁은 데로 가려니
새 50리터짜리 쓰레기 봉지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방 꼴을 짐을 대폭 줄여야 해서 2주 정도 매일같이 버렸다. 누구 물
보다 못해 나선 것이다. 한 시간도 못 되어 네 활개를 펴고 건을 얼마나 버리느냐를 놓고 엄마와 대판 싸움이 벌어지기
누울 공간이 생기는 신통을 체험을 했다. 도 했다. 그중에서도 엄마의 옷과 내 책이 싸움의 빌미가 되
그 친구는 아침에 치워놓고 출근했다가 퇴근하자마자 식 었다.
구들이 어질러 놓은 것을 쫓아 다니면서 치우고, 저녁 먹 엄마의 옷은 어마어마했다. ‘살 빼서 입어야지’ 할 때는 이
고 밥 먹은 자리 닦고, 취침 전에 걸레질로 하루를 마감한 미 지난 나이였는데도 버리지 못했다. 아마 ‘옛날엔 내가 저
다. 전화 걸어서 “뭐해?” 하고 물으면 “치워!” 하는 대답이 것도 입었었는데…’ 하려는 용도였을 것이다. 옷 한 벌마다
가장 많다. 『Zen Theraphy』라는 책에서 읽은 바, ‘overly 각각의 의미와 입고 나갔던 날의 역사가 서려 있을 것이었
ordered disorder’라는 전형적인 강박증이다. 우울증 옆에 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공격했다. “엄마, 그 옷 버려! 한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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