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 - 고경 - 2015년 9월호 Vol.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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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철학, 문학, 사상 등에서도 아직 듣지 못한 것이었기

 때문에 처음 보는 순간 놀라움과 환희심을 갖게 되었어요.
 ‘청담 스님이 얼마나 훌륭한 분이기에 이런 말씀을 다 할 수
 있으실까?’ 생각하고 알아본 결과, 조계사에서 토요일이면
 법문을 하신다고 해 조계사에 갔습니다.”
 청담 스님은 당시 조계사에서 재가불자 모임인 원각회 회

 원들을 대상으로 『금강경』을 설하고 있었다고 한다. 말석이
 었지만 스님은 청담 스님을 만난 것 자체가 기뻤다.
 “청담 큰스님께서는 법문이 끝나고 도선사로 가시던 도중

 에 선학원에서 잠시 쉬셨는데, 저는 큰스님을 뒤따라가 다짜
                                      그림자처럼 성철 스님을 시봉하던 모습
 고짜 인사를 드리고 나서 ‘큰스님, 막증애하라는 말씀이 참
 좋습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시고 큰스님
 께서는 얼굴이 환히 펴지시면서 몹시 기뻐하셨어요. 그때부  그렇게 공부에 매진할 즈음 갑자기 청담 스님이 열반에
 터 매주 토요일마다 『금강경』 법회에 나가게 되었어요. 『금  들었다. 원융 스님에게는 말 그대로 “하늘이 무너진 듯한 아

 강경』 법문이 끝나고 『신심명 (信心銘)』 법문을 들었는데, 거  픔과 슬픔”이었다. 그래도 스님은 다른 거사님들과 마음을
 기서 ‘막증애’를 다시 듣게 되었습니다. 『신심명 (信心銘)』 첫   모아 청담 스님의 『신심명』 법문 녹음을 풀기 시작했다. 밤
 구절이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음이요, 오직 간택함을 꺼릴   을 새워 가며 작업한 결과 『마음의 법문』이라는 이름으로

 뿐이니 미워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통연히 명백하니라.(至道  청담 스님 100일재 영전에 법공양으로 올렸다. 훗날 성철 스
 無難 唯嫌揀擇 但莫憎愛 洞然明白)’잖아요. 그 말씀을 듣고 정말   님의 법어집 중 하나인 『신심명・증도가 강설』도 스님이 힘
 환희용약(歡喜踊躍)하여 불교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됐습  을 보태 출판이 되었다.
 니다.”       “어떻게 인연이 되었는지 제가 두 큰스님의 『신심명』을 결
 원융 스님은 매일 『신심명 (信心銘)』을 수지독송하면서 청  집 (結集)할 행운을 가졌는데, 불교 역사상 ‘문자로서는 최고

 담 스님이 내려준 ‘무(無)’자 화두를 참구했다. 늦게 공부를   의 문자요, 가장 훌륭한 글’로 평가되는 책이 제 마음 속에
 시작한 만큼 한가하게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커다랗게 자리했습니다. 지금까지 일송(日誦)은 중요한 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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