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9 - 고경 - 2015년 9월호 Vol.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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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는 교단 안팎에서 벌어지고 있는 왜곡된 사상에 맞서 적인 자성이 없으므로 공하다고 설한 것입니다.”
치열한 사상투쟁을 펼쳤기 때문이다. 내적으로는 부파불교 공사상은 허무주의나 완전한 무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었
의 실유론(實有論)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밖으로는 정통 바 다. 반야의 공은 아무 것도 없다는 절대 무나 회의주의가 아
라문교 등 외도사상에 맞서 치열한 삶을 살았다. 니라 오히려 존재의 실상을 정확히 꿰뚫어보는 것이다. 존재
용수가 활약할 당시 인도의 사상계는 수론(Sāmkhyā), 승 의 본성을 꿰뚫어보면 각각의 사물은 자기의 본성 [自性]이
론(Vaiśeṣika), 정리파(Nyāya) 등의 사상이 발전하고 있었는 공하다. 하지만 그것은 완전한 무가 아니라 연기(緣起)라는
데 이들 사상은 모두 존재의 실체를 인정하는 실유론에 입 관계망을 통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각해 있었다. 이와 같은 사조는 불교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 중관사상의 근본이 되는 문헌은 불멸 약 500년경에 탄생
었다.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를 비롯해 여러 부파들 또한 실 한 『중론』이다. 약 450구의 게송으로 구성된 『중론』의 핵심
유론적 교설을 주장하고 있었다. 용수는 당대를 풍미하던 내용은 연기 (緣起), 무자성(無自性), 공(空)으로 압축할 수 있
이런 사상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왜곡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다. 용수는 “여러 인연으로 생한 법 [衆因緣生法]은 곧 공이며,
여기서 용수는 파사현정 (破邪顯正)의 깃발을 높이 치켜들 또한 가명 (假名)이며 또한 중도(衆道)”라고 정의했다. 개체 존
었다. 당시 사상계를 주름잡고 있던 실유론적 사상이 논파 재의 본성은 텅 비어 있음으로 개체적 존재의 자성은 실체가
할 사견 (邪見)이라면 불교의 중도사상은 현창해야할 정법이 없다. 그렇다고 존재가 완전히 없는 절대 무는 아니다. 독립
었다. 이에 용수는 반야의 공사상에 입각하여 당대를 풍미 적 실체로서 자성은 없지만 우리들 눈앞에는 수많은 존재들
하던 실유론을 여지없이 논파하기 시작했다. 용수의 공사상 은 분명히 있다. 용수는 이를 가명, 즉 거짓 이름으로 존재하
은 왜곡된 사견을 혁파하고 정법의 깃발을 드는 것이었기에 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중론』에서 말하기를 “공하지만 단
맹목적 부정과 허무주의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절됨이 아니요(雖空而不斷), 상속하지만 항상함은 아니다(雖有
성철 스님은 용수의 사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而不常).”라고 했다. 개체적 존재는 공하지만 그렇다고 없는 것
“단순히 모든 것을 부정하는 허무주의도 아니고, 도피와 이 아니며, 눈앞에 가로써의 존재가 있지만 그것은 영원한 실
체념에 사로잡힌 회의주의도 아니며, 결코 아무 것도 존재 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처럼 존재는 있음도 아니고, 그렇다
하지 않음을 뜻하는 무(無)도 아닙니다. 그의 공사상의 근저 고 없음도 아니기 때문에 존재 자체가 중도이다.
에는 어디까지나 연기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곧 연기하여 『중론』에 등장하는 이와 같은 세 가지 명제는 후대 불교
생겨나는 일체의 법은 고유한 본성, 즉 자성이 없으며, 고정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삼제게로 불리는 공가중(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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