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3 - 고경 - 2015년 9월호 Vol.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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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을 존경하는 척 하면서 ‘모두까기’한 작품이다. “이런저런   니다. 그래야 번역을 할 게 아닙니까? 그냥 볼 때는 모르고

 종파의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경의 맥락에 의지했  지나가도 되지만, 번역할 때는 모르고 지나가서는 안 됩니
 다”고 하는, 경안에 대한 자신감이 보이는 또 하나의 종결자  다. 본뜻대로 번역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다.
 운허 스님은 이 소를 좋아하셨다. 『강화』 곳곳에 소개하  경에 대한 존경심은 물론, 한 땀 한 땀 심량(心量)을 다하
 면서 “내가 이러니 정맥소에 반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는 장인정신을 볼 수 있다. 논리가 복잡해서 접근하기 쉽지

 할 정도로 빠져 계신 걸 확인할 수 있다. 누구에겐가, 무엇  않은 경이지만 스님의 친절한 강화를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엔가 반해서 평생을 지낼 수 있다면 복 받은 인생이다. 스님  알아듣는 대목도 생긴다. 전달이 되도록 설명하려고 얼마나
 은 범어사에서 강의하던 때부터 번역에 착수하여 역경원장  애쓰셨는지 느껴진다. 부처님이 까맣게 어린 동생 아난을

 을 지낼 때 번역본을 냈고, 그 뒤에도 손에서 놓지 않고 계  쥐 잡듯이 잡는 대목에서는 그 장면이 중계방송을 보듯 전
 속 고치셨다. 잘못된 곳을 발견하고 하나씩 고칠 때마다 매  해지니, 경가(經家)로서 스님의 면목이 십분 발휘된 책이라
 우 기뻐하셨다고 한다.  할 만하다.
 스님을 직접 뵌 적은 없고 봉선사를 드나들면서 얻어들은   이분의 제자로 역시 평생을 역경사업에 바치신 분이 지금
 이야기로 어떤 분인지 대강은 알고 있었지만 몇 달째 『강화』  의 봉선사 조실 월운 큰스님이다. 번역에 관해 늘 하시는 말

 를 보면서 직접 만난 착각이 든다. 녹음테이프를 풀어 만든   씀이 있으니 “알고 하면 전달이 되고, 모르고 하면 전달이
 책이라서 그런지 육성을 듣는 느낌이다. 번역도 어찌나 깔끔  안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해 보면 이 말을 실감할 수 있다.
 하게 하셨는지 모른다. 전문용어는 한자 그대로 두고 서술어  뜻을 이해하면 글자 한두 개 생략하거나 도치해도 전달이

 는 과감하게 풀어주어, 고전의 맛이 살아 있으면서도 고루하  되고, 소화 안 된 채 번역하면 원문 그대로 옮겨놓아 봤자
 지가 않다. 필요한 곳마다 계환소와 정맥소의 차이를 구분하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훌륭한 스승 밑에서 평생을 연
 면서 소가(疏家)의 해석을 경문에 맞추어 보도록 설명을 해  마하신 분의 간단한 한마디가 번역하는 사람에게 최고의 지
 놓았다. 가끔 번역에 대한 의견을 피력해 놓은 곳도 있다.  침이 된다.
            얼마 전 봉선사에 갔을 때 조실스님 계신 다경실 입구에

 “글자 하나라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되며, 분명하게 뜻  ‘楞嚴道場’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것을 보고 감회가 일었
 을 알고 남이 물으면 대답할 만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  다. 계속 거기 걸려 있었을 것이나 이제야 눈에 들어온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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