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9 - 고경 - 2015년 9월호 Vol.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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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칙】   했다. 주변의 지형지물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작전의 기본

 법안이 발을 가리키다(法眼指簾, 법안지렴)  이다. 기대야 할 때는 툭 까놓고 기대야 한다. 최고보다는 최
          선이, 최선보다는 최적이 더욱 합리적인 법이다.
 법안문익 (法眼文益)이 손가락으로 발을 가리키니 두 명의   “하나를 얻었다.”는 건 시야가 확 트였다는 것이고, “하나
 스님이 가서 동시에 발을 걷어 올렸다. 법안이 말했다. “하  를 잃었다.”는 건 땡볕을 맨몸으로 맞아야 하는 것이라고 나
 나는 얻고 하나는 잃었구나.”    는 읽었다. 법안은 기회비용이란 개념을 알고 있었다. 세상

          에 공짜는 없으며 살아 있다면 살아서 먹은 밥만큼의 값을
 광화문광장을 지나쳐야 하는 퇴근길이다. 지하철역으로   치러야 한다는 걸, 지렴 (指簾)은 가르치고 있다. 가령 창문
 들어갈 때면 원전 (原電) 건립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이 매일  을 열면 바람과 함께 파리도 들어온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

 같이 눈에 밟힌다. 누군가 “우방인 줄 알았는데 무기장사꾼”  으로 억압한다. 질투는 독이면서 힘이다. 가족은 나를 위로
 이라 적힌 피켓을 들었다. 미국을 겨냥한 비난일 터인데, 마  해주고, 적 (敵)은 나를 위로가 필요 없는 존재로 발전시킨다.
 음속으로 정정해줬다. ‘우방이면서 무기장사꾼이겠지.’ 우방  세월은 젊음을 빼앗는 대신 욕정도 덜어준다. 죽음은 소멸
 이니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대신 우방이니까 물건도 팔  이면서 평안이다. 살아 있는 것들은 언젠가는 죽겠기에 봐
 아줘야 하는 것이다. 힘센 친구가 가끔은 서운하겠으나, 혼  줄 만하다.

 자 다니면 또 불안한 게 약골의 처지다. 대륙과 해양의 깡패
 를 동시에 마주한 한반도에 요구되는 자세는, 기생충과 변덕
 쟁이의 처세다. 간과 쓸개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며 최대한

 영양분을 뜯어내는 일이다.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 일은 삶의
 내구성을 높인다. 중도(中道)란 그늘을 살필 줄 아는 지혜
 다. 이것이 감추고 있는 저것을 보고, 사태의 표면만이 아니
 라 선후(先後)와 인과(因果)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오

 판과 실수가 적다. 전화위복과 새옹지마는 부처님의 말씀이   장웅연(張熊硯)   집필노동자.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2002년부터 불교계에
          서 일하고 있다. ‘장영섭’이란 본명으로 『길 위의 절』, 『눈부시지만, 가짜』, 『공부하지 마라』,
 아니지만 불교적이다. 또한 ‘굴러가는 개똥도 약이 된다’고   『떠나면 그만인데』, 『그냥, 살라』 등의 책을 냈다. 최근작은 『불행하라 오로지 달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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