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1 - 고경 - 2015년 9월호 Vol.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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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주인공의 삶
            스님은 평생 『능엄경』을 읽고 번역하고 강의하셨다. 『능엄

          경』과의 평생 인연은 젊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전
          쟁이 끝나고 얼마 뒤에 제방의 강사들이 모여서 각자 경을
 『능엄경강화』와 함께 보낸   하나씩 맡아서 전공을 삼자고 결의한 바, 스님이 『능엄경』


 ‘지옥에서의 한 철’  을 맡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능엄 전담반으로 일생을 사셨
          다. 강의는 1950년대 범어사에서 시작했는데 스님이 『능엄

          경』을 강의하는 시간에는 선방의 수좌들도 많이 와서 들었
          다고 한다. 선을 닦는 데 기초가 되는 이론과 수행법을 설한
 _  이인혜
          것이기 때문에 수좌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 같다. 이 경은 예
          부터 지금까지 강원의 교재로 쓰일 만큼 히트상품이자 스테
          디셀러이다.
            ‘능엄기신 동첩백십 (楞嚴起信 動輒百十)’이라는 말이 내려온
          다. 『능엄경』과 『기신론』은 꺼내들기만 하면 주석서가 열 가
 한낮의 매미소리에 찌다가도 어둠 속에서 울리는 귀뚜라  지, 백 가지라는 뜻으로, 이 경의 위상을 짐작케 한다. 실로

 미 소리에 절기의 은혜를 느낀다. 해마다 여름이면 더운 것  대단한 분들의 주석이 많아서 공부를 시작하기도 전에 질리
 이 당연하지만 올해는 문자 그대로 더위 먹는다는 말을 실  게 만든다. 원나라 때 천여유칙 선사가 당송 대에 나온 주석
 감했다. ‘지옥에서 보낸 한철’이었지만 그래도 정신을 놓지   중에 아홉 분의 작품을 가려 뽑아서 회편하고 자신의 의견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운허 스님의 『능엄경강화』에 폭 빠진   을 붙여 『회해會解』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일종의 완결판이
 덕분이었다.   라 할 수 있다. 잘 알려진 계환의 『요해要解』, 장수의 『의해義
 스님은 평북 정주의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독립운동에   海』 등이 담겨 있다. 여러 입장의 해석을 비교해 볼 수 있기
 투신했다가 금강산에서 출가하셨다. 도올 선생님의 ‘독립운  때문에 텍스트로 많이 유통되었던 듯하다.
 동사’에 의하면, 정주는 조선시대 과거시험에서 장원급제를   그 뒤 명나라 때 진감 선사가 이것을 자세히 검토한 후

 가장 많이 배출한 동네라고 한다. 게다가 동갑나기 육촌이   20년이나 걸려서, 중간에 더위를 먹었는지 기절했다 깨어나
 이광수인 걸 보면 문기 (文氣)는 타고나신 듯하다.  기도 하면서 『정맥소』라는 주석을 썼다. 기라성 같은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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