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1 - 고경 - 2015년 10월호 Vol.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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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고 설하는 부파’라는 뜻을 담고 있다. 설일체유부의 핵 구절이다. 반야의 공사상과 중관사상은 사물의 본질, 존재
심은 ‘삼세실유법체항유(三世實有法體恒有)’로 압축된다. 과거 의 근본이라는 관점에서 일체 만물을 설명한다. 그런 관점
현재 미래의 삼세는 실재하며, 존재의 본체는 항상 존재한다 에서 바라보면 오온이 공함으로 마땅히 나(我)도 없고 인식
는 실재론적 사유를 담고 있다. 의 대상이 되는 경계(境界)도 없다. 여섯 가지 감각기관인 육
이런 주장은 제행무상(諸行無常)과 제법무아(諸法無我)와 근도 공하고, 그 대상이 되는 육경도 공하다. 나아가 무명 (無
같은 부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부파불교 明)에서 노사(老死)로 이어지는 십이연기의 과정도 공하고,
의 유론에 대응하여 등장한 사상이 중관사상이다. 용수보 고집멸도라는 고통의 발생과 소멸도 공하다는 것이다.
살은 설일체유부의 사상은 부처님의 근본정신을 훼손하는 이렇게 보면 중관사상은 존재의 실상, 사물의 본성, 세계
삿된 견해로 파악했다. 그는 유부의 실재론적 세계관을 논 의 궁극적 원리에 대해 탐구하는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파하기 위해 반야의 공관(空觀)에 입각하여 존재의 실체는 래서 중관사상을 연구하는 학파를 법성종(法性宗)이라고 부
공하다는 ‘무견 (無見)’을 주창하게 된다. 른다. 존재의 본성과 사물의 근본을 탐구하는 종파라는 뜻
매일 ‘반야심경’을 독송하는 불자라면 반야의 공관이 얼 이다. 존재의 본성에서 바라보면 세상의 모든 것은 물거품처
마나 혁신적이고 과격한 주장인지 알 것이다. 일례로 반야심 럼 명멸하는 현상들일 뿐 그 본성에서는 모두 공하기 때문
경에서는 오온(五蘊)도 없으며, 육근(六根)과 육경(六境)도 없 이다.
으며, 심지어는 무명 (無明)도 없고, 무명이 다함도 없다고 설
한다. 오온, 십이처, 십이연기, 사성제 등은 불교교설의 기본 중관의 악취공을 비판하다
을 이루는 내용들인데 이것을 하나하나 부정하고 있다. 부 본성에서 보면 모든 존재가 공할지라도 현상의 세계에서
처님께서 깨달은 핵심 내용이 연기설 (緣起說)인데 그와 같은 바라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비록 물거품 같을지라도 무수
십이연기도 없으며, 초전법륜에서 5비구에게 설법한 사성제 한 존재들이 눈앞에 존재하고, 그것들은 우리들의 삶을 결
마저 없다고 설하고 있다. 정하는 결정적 힘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야심경
여기서 불자들은 모두 공하다면 굳이 그런 교리를 공부해 은 그런 현상이 아니라 그 이면을 설명하는 말씀이다. 따라
야하는 이유를 알 수 없게 된다. 우리가 이런 혼돈에 빠지는 서 ‘시고공중’이라는 전제조건을 간과하면 자연히 혼란에 빠
것은 반야심경에서 말하고 있는 중요한 단서를 하나 놓치고 져들기 마련이다. 반야의 공관에서 설하고 있는 오온, 육근,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러므로 공 가운데는(是故空中)’이라는 육경, 십이연기, 사성제가 공하다는 것은 사물의 본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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