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5 - 고경 - 2015년 10월호 Vol.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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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학파는 유식학파로부터 악취공(惡取空)이라는 비판에 직 체시킨다. 유식학도 공견이나 유견에 집착하는 변견 (邊見)을
면하게 된다. 중관학파는 공을 잘못 이해하여 모든 것이 없 떠나 중도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가사지론』에는
다는 허무주의적 세계관에 빠뜨린다는 비판이다. 이런 맥락 “있음과 있지 않음 두 가지를 함께 멀리 떠나는 것 (二俱遠離)
에서 본다면 유식학은 부파불교의 유견과 중관사상의 무견 은 법상(法相)이 포섭하는 진실한 성품의 일이니, 이것을 둘
을 종합한 또 다른 중도사상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성철 이 아니라고 이름한다. 둘이 아니므로 중도라 이름한다.”라
스님은 중관사상과 유식사상이 비록 겉보기에는 서로 대립 고 설하고 있다.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두 사상의 근본을 이해하면 충돌하는 나아가 “양변을 멀리 떠남[遠離二邊]을 위없는 부처[無上
가르침이 아니라고 했다. 佛]”라고 설하고 있다. 양변을 벗어나는 중도를 구경의 경지
중도의 관점에서 보면 ‘성 (性)이 곧 상(相)이고, 상이 곧 성’ 로 삼는 것은 중관사상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유식학에서
이 되는 성상불이 (性相不二)이므로 중관은 성을 논하고, 유 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처럼 유식의 구경목표도 양변을
식은 상을 논하고 있지만 본질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인 떠난 중도의 체득, 양변이 서로 소통하는 중도에 있다는 것
연 따라 생겨나는 모든 존재[衆因緣生法]는 본성에서 보면 철 이 『백일법문』의 설명이다. 이렇게 보면 중관은 악취공이고,
저히 공하기 때문에 모든 존재는 ‘즉공(卽空)’이다. 하지만 눈 유식은 중관을 비판했다는 학계의 대립적 이해구조는 깨진
앞에는 펼쳐져 있는 현상적 모습은 또 분명하게 존재함으로 다. 중관이든 유식이든 핵심은 중도에 있음으로 근본으로
‘즉가(卽假)’이기도 하다. 따라서 존재의 본성인 공(空)이 그 바로 들어간다면 중관이든 유식이든 부처님의 가르침을 훼
대로 현상으로써의 가(假)이고, 현상인 가가 곧 본성에서는 손하지 않는 가르침이 된다는 것이 『백일법문』의 결론이다.
공함으로 존재의 실상은 공과 현상의 중도(中道)라는 것이
다. 이처럼 사물의 본성인 성 (性)과 인연화합으로 존재하는
상(相)이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 소통한다. 따라서 성
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중관과 상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유식
을 대립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법의 근본을 제대로 파악하
지 못한 데서 비롯된 오해라는 것이 성철 스님의 지적이다. 서재영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선의 생태철학연구’로 박사학위를
결국 성철 스님은 유식학의 핵심도 중도라는 결론을 이끌 받았다. 동국대 연구교수, 조계종 불학연구소 선임연구원, 불교신문 논설위원 등을 거쳐 현재
불광연구원 책임연구원으로 있다. 저서로 『선의 생태철학』 등이 있으며 포교 사이트 www.
어 냄으로써 중관과 유식은 대립적 교설이라는 관점을 해 buruna.org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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