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7 - 고경 - 2015년 10월호 Vol.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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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 주었다. 알고 보니 ‘도톤(道頓)’은 이 운하건설을 주관한

          사람의 이름이었다. 지역 상인들의 요청과 행정적 후원을 바
          탕으로 이룬 3년에 걸친 대역사였다. 경제는 물류가 근본이
          다. 상권이 넓어지고 규모가 커지면서 당시에 유통로를 성공
          적으로 확보한 것이 오늘날 이 거리를 상업중심지로 자리매
 법선사(호젠지) 금 법당  천일전(센니치마에) 안내판
          김한 기반이 되었을 것이다. 풍수학에서 물은 재물을 상징한
          다. 운하에 물이 흐르니 물류가 순조롭고 사람이 모이고 더
          불어 주변가게의 개까지도 만엔짜리를 물고 다녔을 것이다.



            ‘테이크 아웃’을 ‘타포’라고 번역하다
            많이 걸었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 커피집으로 들어갔다.
 도돈굴(도톤보리) 간판  테이크 아웃. 타포
          입구에 ‘테이크 아웃(take out)’이란 큰 글씨 밑에 ‘타포(打包)’
 한 곳)가 둘이 아니라고 했다. 도톤보리 거리를 배회하면서도   라고 부기했다.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유커 (遊客, 중국관광
 마음의 중심만 챙길 수 있다면 이 거리 역시 누구든지 수행  객)’를 배려한 것이리라. ‘타포’는 스님네들이 먼 거리를 이동

 공간으로 환원할 수 있을 터이다. ‘도돈(道頓)’이란 이름자에  할 때 필수품을 담아 등에 지는 ‘걸망’을 말한다. 커피를 들
 서 보듯 성철 (性徹, 1912~1993) 스님께서 목소리에 톤을 올렸  고 다니면서 운하를 구경하려면 종이컵에 담아야 한다. 커
 던 ‘돈오(頓悟, 단박에 깨달음)’ 수행처로써 이 거리를 강력추천   피잔을 걸망에 비유한 그 솜씨가 놀랍다. 그러고 보니 내 가

 해야겠다.    방도 이미 타포였다. 한국에서 가져 온 휴대용 UCC 봉지커
          피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돌아가서 『보림전』을 확인해 봐야
 ‘도톤’은 운하건설의 주역이름이다  겠다. ‘타포’라는 말이 어디쯤 나오는지.
 땅바닥을 판 굴(堀) 속으로 물이 흐르는 인공운하는 1615
 년 완성되었으니 400년의 긴 역사를 자랑한다. 50여 명 정  원철 스님           해인사승가대학장이며, 조계종 불학연구소장을 역임했다. 해인사, 은해

 원인 작은 관광유람선을 타고 20여 분 간 주변을 살펴보았  사, 실상사, 법주사, 동국대 등에서 경전과 선어록의 연구・번역・강의로 고전의 현대화에 일
          조하면서, 일간지 등 여러 매체에 전문성과 대중성을 갖춘 글로서 주변과 소통하고 있다.『집
 다. 안내인은 길이 2.7km, 폭 30~50m, 깊이 약 5m라고 알  으로 가는 길은 어디서라도 멀지않다』외에 몇 권의 산문집과 번역서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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