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2 - 고경 - 2015년 10월호 Vol. 30
P. 42
보면 그렇다는 것이지 현상적으로 존재하는 것들마저 없다 이 ‘공공(空空)’이다. 하지만 어떤 교설이든 학파가 되고 사상
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적 정체성이 성립되면 그것을 지키려는 과정에서 도그마가
반야의 공은 어디까지나 ‘존재의 본성’에 대한 설명이다. 등장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존재의 본질은 꿰뚫어보지 못하고 현상적 유식사상은 이처럼 중관사상이 갖는 극단적 공견을 비
으로 펼쳐지는 오온을 부정하고, 육근과 육경을 부정하고, 판하며 성립한 사상이다. 중관사상이 철저히 사물의 공성
십이연기와 사성제를 부정하는 내용만 받아들인다. 그렇게 을 주장하는 반면 유식사상은 완전한 실유를 주장하는 것
되면 모든 것이 덧없는 것이 되고 만다. 공으로 만병통치약 은 아니지만 중관의 공과는 반대되는 입장을 피력한다. 이
으로 삼으면 허무적 세계관에 빠지게 되고, 모든 것이 공이 에 대해 성철 스님은 “용수 보살은 법성 (法性)을 많이 말하
라고 주장하면 염세주의에 빠져들게 된다. 그 결과 인간의 고, 유식 계통에서는 법상(法相)을 많이 말해서 은연중에 반
업도 공하므로 열심히 선업을 쌓을 필요도 없다는 궤변에 대적 입장”처럼 보인다고 설명한다. 존재를 근원적 관점에서
빠지게 된다. 연기도 공하고, 사성제도 공함으로 거룩한 진 바라보고, 법성 (法性)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것은 공하다. 하
리를 깨닫기 위해 수행할 필요도 없다는 자기부정에 빠지게 지만 현상[相]의 관점에서 보면 눈앞에는 놀랄만한 다양한
된다. 존재들이 펼쳐져 있다. 유식은 바로 그런 현상적 모습을 설
아무리 훌륭한 교설이라도 그것이 절대화 되면 독단이 되 명하기 때문에 유식학파를 법상종(法相宗)이라고 부른다. ‘법
기 마련이다. 그것을 예견한 용수는 중론에서 공(空)의 이치 의 현상’, ‘법의 모습’을 논하는 종파라는 뜻이다. 법상의 관
를 비누에 비유했다. 손에 묻은 때를 씻기 위해서는 비누를 점에서 보면 모든 것을 공하다고 보는 중관사상은 비판의
칠해야 한다. 하지만 때를 씻어낸 뒤에는 비눗물마저 말끔히 대상이 된다. 유식은 모든 것이 공하다는 명제 대신 ‘일체
씻어내야 한다. 그래서 『아함경』과 『금강경』에서도 부처님의 만법은 오직 식 (萬法唯識)’이라고 설명한다. 이 사상을 체계화
가르침을 ‘뗏목과 같은 것(如筏喩者)’이라고 비유했다. 강을 한 것은 미륵(Maitreya)이며, 그의 뒤를 이어 무착(Asānga)과
건너가면 뗏목도 버려야 하는 것이다. 용수는 부파불교의 세친 (Vasubandhu)이 유식학을 대성하였다.
유론을 깨기 위해 근본적 관점에서 공을 설파했다. 공은 유
론의 왜곡과 독단을 깨는 범위에서 유효하다. 그렇지 않고 유식사상의 핵심도 중도
공이 모든 것에서 절대화되면 그것은 또 다른 왜곡이 된다. 용수는 『중론』에서 “공에 집착하면 제불(諸佛)이 와도 구
유론이라는 사견을 혁파했다면 공에도 집착하지 말라는 것 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그의 가르침을 계승한 중
40 고경 2015. 10.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