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7 - 고경 - 2015년 10월호 Vol.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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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추회요』, 그 숲을 걷다
          에 구경무심경(究竟無心境)이 현전하여 약과 병이 전부 소멸

          되고 교와 관을 다 휴식하느니라.”는 『종경록』 「표종장」의 문
 첫 번째 걸음, 성철 스님이 보신   구를 성철 스님께서 『종경록』을 직접 보고 인용하신 것인지,

          아니면 『종경록』의 촬요본인 『명추회요』를 보고 인용하신
 『명추회요』의 자취를 찾아  것인지 하는 데 있었다.

            왜냐하면 『종경록』은 권수만 해도 100권에 달하는 방대

          한 분량이므로 이 책에서 필요한 부분을 찾아서 인용한다
 _  박인석   는 것은 무척 번거롭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라 생각되었
          기 때문이다. 또한 『선문정로』 앞부분에서 성철 스님은 『종

          경록』뿐 아니라 그것의 촬요본인 『명추회요』 역시 소개하고
          있으므로, 필자는 성철 스님께서 『종경록』의 촬요본인 『명
          추회요』를 보고 『선문정로』에다 『종경록』의 문구를 인용하
          시지는 않으셨을까 하는 추측도 해보았다.
 <선림고경총서> 2집으로 올해 7월에 간행된 『명추회요』의   이런 생각들을 하며 백련암에 도착했는데 원택 스님께서

 해제를 쓰기 위해 필자는 5월 초에 백련암을 방문하였다. 그  반갑게 맞아주셨다. 스님께서는 성철 스님께서 보시던 고서
 곳에 소장된 성철 스님의 고서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가 있는 서고의 문을 열어주시면서 그 속에 있는 책들을 열
 필자가 무척 궁금하게 여겼던 점은 성철 스님께서 쓰신   람하게 해주셨다. 필자는 2013년에 작성된 목록을 통해 백

 『선문정로』의 제1장에 가장 먼저 인용된 “견성을 하면 즉시  련암에 모두 다섯 질의 『종경록』이 소장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섯 질 가운데는 지금도 해인사 장경각에 보관
          되어 있는 목판본 『종경록』에서 찍은 인출본이 하나를 차지
 이번 호부터 동국대 불교학술원 박인석 교수님의 ‘『명추회요』, 그 숲을 걷다’
 연재를 시작합니다. 박 교수님은 ‘영명연수 『종경록』의 일심사상 연구’로 박  하고 있었고, 또 그것을 저본으로 삼아 활자로 찍은 일본의
 사학위를 받았으며, 최근 백련불교문화재단에서 펴낸 『명추회요』의 ‘해제’를   대정신수대장경에 수록된 『종경록』이 또 하나를 차지하고
 집필하기도 했습니다.
 박 교수님은 이번 연재를 통해 『명추회요』의 전반을 독자 여러분께 쉽게 전  있었다. 나머지 세 질 가운데 두 질은 중국에서 찍어낸 가흥
 할 계획입니다. - 편집자
          대장경에 들어 있던 『종경록』이고, 마지막 한 질은 조선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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