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9 - 고경 - 2015년 10월호 Vol.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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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붓으로 필사한 것이었다.

 현존하는 『종경록』의 가장 오래된 판본은 바로 해인사에
 소장된 고려시대의 판본이다. 명대 이후로 나온 판본을 이
 와 비교해보면 글자의 출입은 거의 없지만, 『종경록』의 체제
 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보인다. 중국의 오대 시기 항주에서
 활동했던 영명연수(永明延壽, 904-975) 스님이 편찬한 『종경

 록』 100권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종지를 표방하는
 「표종장」, 종지에 대한 의문과 대답을 기술한 「문답장」, 그리
 고 종지에 대한 경론의 문구를 인용한 「인증장」의 세 장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고려의 판본에서는 「표종장」의 위치
 를 1권에서 61권 전반부까지로 본 반면, 명대 이후의 판본
 에서는 「표종장」을 『종경록』 1권의 전반부까지로 보는 점에
 서 차이가 생기게 된 것이다.                              가흥대장경 내 『종경록』
                                               중 『선문정로』 첫째 인용
 필자는 성철 스님의 『선문정로』에서 『종경록』 인용이 나               이 나오는 대목
 오는 구절을 살펴보던 중 『종경록』의 「표종장」에 나오는 문
 구를 인용할 때면 스님께서 꼭 “『종경록』 「표종장」”이라는
 표시를 해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을 백련암에 소장된 다  스님께서 『명추회요』의 발간사에 쓰신 것처럼, 『명추회요』

 섯 질의 『종경록』의 체제와 비교해 보았더니, 이는 「표종장」  는 국내에서 판본을 구할 수 없어서 1990년대 들어와 일본
 의 위치를 1권의 전반부로 보고 있는 가흥대장경의 『종경  에 유학하고 있던 사제스님을 통해 어렵게 복사본을 구해올
 록』과 일치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성철   수 있었다고 하셨다.
 스님께서 가흥대장경에 들어 있는 『종경록』을 해인사의 『종  이처럼 백련암에 소장된 다섯 질의 『종경록』을 열람하고,
 경록』 인출본보다 먼저 보셨던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  또 『명추회요』와 관련된 원택 스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보

 다. 한편 백련암에는 『명추회요』가 따로 소장되어 있지 않았  니, 필자가 백련암에 오는 동안 가졌던 의문은 점차 해답을
 다. 이에 대해서는 원택 스님께 직접 여쭤볼 수 있었다. 원택   찾아가고 있었다. 즉 성철 스님께서 『선문정로』(1981)를 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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