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0 - 고경 - 2015년 10월호 Vol.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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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데 있어 인용한 『종경록』의 문구는 『명추회요』와 같은 은 필자가 처음이지만, 2010년을 전후해서 중국, 대만, 일본
촬요본이 아니라 『종경록』 100권 전체를 두루 열람한 뒤 뽑 에서는 영명연수 스님과 『종경록』에 대해 거의 10편에 달하
아낸 것이고, 스님께서 직접 보셨던 『종경록』은 가흥대장경 는 박사학위논문이 나왔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종경록』
에 들어 있던 명대 이후의 판본이라는 점이었다. 이 두 가지 을 보는 관점이 연구논문마다 모두 다르다는 점이다. 어떤
를 확인한 뒤, 필자는 가흥대장경의 『종경록』을 유심히 들 이는 연수 스님의 근본입장이 중관(中觀)에 있다고 보기도
춰보았다. 혹시 『선문정로』에 인용된 대목을 전후해서 성철 하고, 어떤 이는 화엄 (華嚴)에 있다고 보기도 하는 등 관점의
스님께서 줄을 긋거나 메모를 하신 것은 없나 해서였다. 그 차이가 상당히 큰 것이다. 이는 아마도 『종경록』 속에 중국
런데 그런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아마도 『종경록』을 보시 불교의 제반 가르침이 종횡무진으로 인용되고 있고, 따라서
다가 필요한 문구는 따로 메모해서 기록해두신 것으로 생각 같은 『종경록』을 보더라도 연구자의 관점에 따라 그것의 핵
된다. 심을 여러 가지로 다르게 파악하였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결
하루 동안 백련암에서 확인했던 사항들을 원택 스님께 국 『종경록』을 보는 연구자의 관점이 각각의 논문들에 크게
말씀드린 뒤, 필자는 서울로 올라와서 『명추회요』의 해제 작 반영되었던 것이다.
성에 매진하였다. 그런데 성철 스님을 오랫동안 시봉하셨던 이렇게 본다면 한국 근대의 대선사(大禪師)였던 성철 스님
원택 스님께서는 이 날 필자가 확인한 몇 가지 내용들을 듣 께서 보신 『종경록』에 대한 관점 역시 앞으로 해명되어야 할
고서 조금 남다른 소회가 있으셨던 것 같았다. 『명추회요』 여지가 많이 남아 있는 셈이다. 남아 있는 문헌 기록으로 본
가 출판된 후 들은 말씀이지만, 원택 스님께서는 『선문정로』 다면, 『종경록』에 대한 관심과 언급은 고려시기에 비교적 성
의 제1장 견성즉불(見性卽佛)에 나온 성철 스님의 돈오돈수 하게 이루어졌다가, 조선시대에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이
사상이 영명연수 스님의 『종경록』 「표종장」의 견해에 입각한 후 성철 스님에 이르러서야 이 문헌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
것이라고 직관적으로 생각하셨다고 한다. 이 말씀을 듣고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철 스님께서 이 문헌을 높이
나서 필자는 영명연수 스님의 돈점론을 연구한 성과들을 찾 평가한 이유에 대해서는 앞으로 여러 각도에서 살펴볼 필요
아보았는데, 올해 초 일본에서 나온 연구서 가운데 『종경록』 가 있다. 다만 『종경록』은 분량이 너무 방대하므로, 그것을
이 돈오돈수의 입장에서 선종의 수행론을 종합하였다는 관 십분의 일 가량으로 축약해서 요약한 『명추회요』를 통해 그
점을 찾을 수 있었다. 런 연구를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국내에서 『종경록』을 연구해서 박사학위 논문을 받은 것 『종경록』은 100권에 달하는 큰 분량의 책이지만, 그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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