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6 - 고경 - 2015년 11월호 Vol.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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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림별어
작된다. 자상한 성정의 도반스님은 ‘삐뽀삐뽀’하며 비상등을
켠 채 전속력으로 동물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응급조치를
마친 수의사는 “너무 나이가 많아 가망 없다.”고 최종 통보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했다. 할 수 없이 사찰로 데리고 왔다. 수건으로 털의 물기를
개의 마음까지 읽다 닦아내고 헤어드라이기로 몸을 말린 후 전기난로를 피웠다.
입을 강제로 벌려 우유와 약을 계속 먹였다. 드디어 사흘 후
에 깨어났다. 생명 있는 것은 어쨌거나 최선을 다해 돌볼 수
밖에 없는 일이다. 그리고 15년 동안 천년고찰의 문화재를
_ 원철 스님
지켜주었으니 이미 자기 밥값을 한 까닭이다.
#이야기 둘
경기도 포천의 어떤 절에서 만난 그 진돗개는 여간 사나
#이야기 하나 운 게 아니었다. 산에서 내려 온 멧돼지가 혼비백산하며 도
강원도 동해안에 있는 도반 절에서 추석연휴를 보냈다. 망갈 정도로 용맹을 떨쳤다. 어떤 날은 올무에 걸렸는지 털
아침 점심 저녁을 먹은 후 하루 세 번 느긋한 걸음걸이로 이 빠지고 허리부분에 철사자국이 선명했다. 그래도 그 기
동구까지 포행을 다녔다. 천천히 걸으면 왕복 40분 가량 걸 상은 여전했다. 온 산을 헤집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렸다. 적당한 경사로 인하여 하루 운동량으로 충분했다. ‘보 제대로 사고를 쳤다. 앞발이 완전히 찢어진 채 나타난 것이
리’라는 이름을 가진 진돗개가 늘 동행했다. 늘 눈곱이 끼어 다. 칼로 그은 것처럼 일직선으로 벌어져 생살이 그대로 드
있는 이 녀석도 나이가 만만찮아 올라올 때는 헉헉거렸다. 러났다. 상처길이가 족히 20cm는 될 것 같았다. “어이그!”
그래도 얼마나 깔끔한지 절에 몇 년을 같이 살아도 똥 누는 하며 동물병원으로 싣고 갔다. 깁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다. “그냥 두면 어찌 되느냐?”고 물었더니 “파상풍 걸려 죽지
어느 해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날 기진맥진상태로 주지실 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할 수 없이 모든 것을 수의사의
앞에서 쓰러졌다고 했다. 아마 계곡을 건너다가 물살에 휩 결정에 맡겼다. 개 몸값의 몇 배가 되는 비용을 지불한 뒤
쓸려 떠내려가면서 죽을힘을 다해 헤엄쳐 나온 것으로 짐 병원문을 나섰다. 과다지출에 대한 화풀이로 개 머리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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