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1 - 고경 - 2015년 11월호 Vol.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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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법문 다시 보기
살아 있는 동안 나의 정체성을 확보해 주는 것은 ‘의식(意
識)’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죽은 이후 다음 세대로 이어
행위에 대한 기록과 윤회의 주체 지며 윤회하는 ‘나’의 자기동일성은 무엇이 유지해 주는가
가 업보윤회설의 관건인 셈이다. 초기불교에서 말하는 인간
- 『해심밀경』의 유식사상 -
의 인식은 18계설로 요약된다. 즉 여섯 가지 감각기관[六根]
이 여섯 가지 객관대상[六境]을 보면서 만들어지는 여섯 가
_ 서재영
지 인식 [六識]이 우리가 말하는 의식이다. 하지만 이렇게 성
립된 의식은 어디까지나 생존의 영역에서만 유효하다. 그 의
식이 작동하는 개체가 죽으면 의식도 함께 사라지고 말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식은 이생에서 지은 업에 대해 기억할
수도 없고, 업에 대한 정보가 없으므로 자신의 업에 의해 영
향을 받는 일도 없다.
윤회의 주체는 무엇인가? 이런 문제에 대해 교리적으로 치밀하게 설명하는 것이 대
불교에서 보는 중생의 범주는 단지 인간만을 의미하는 것 승불교의 양대 산맥 중에 하나인 유식학(唯識學)이다. 유식
이 아니다. 중생은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이라 학에서는 우리가 의식이라고 부르는 6식 밑에 두 개의 식
는 육도의 세계에 걸쳐 있는 다양한 생류(生類)를 포괄하는 (識)이 더 있다고 보았다. 바로 제7식과 제8식이 그것이다.
개념이다. 그리고 하나의 개체는 그 개체로 확정된 것이 아 유식학의 근본경전인 『해심밀경』에 따르면 삶과 죽음을 거
니라 자신이 지은 업에 따라 다음 생이 결정된다는 것이 업 듭하는 중생의 근원적 자아이자 윤회하는 존재의 자기동일
보윤회설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교설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성을 지켜주는 뿌리는 제8아뢰야식이라고 한다. 아뢰야식은
풀어할 숙제도 많다. 정말로 삶은 일회적으로 끝나지 않고 개체의 죽음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다음 생으로 이어지
다른 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며, 금생에서 지은 업의 씨 며 나의 행위정보를 전달하는 윤회의 주체라는 것이다.
앗[業因]에 따라 다음 생에 그 과보(果報)를 받는 것이며, 내
가 한 행동은 누가 어디에 기록하고 증언하는 것이며, 다음 씨앗처럼 기록을 저장하는 식
생으로 이어지는 윤회의 주체는 무엇인가라는 것들이다. 윤회하는 개체의 근원적 뿌리가 되고, 자기 존재의 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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