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8 - 고경 - 2015년 12월호 Vol.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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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추회요』, 그 숲을 걷다
                                                                               지를 오늘날 확인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필자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종경록』의 판본인 고려대장경본과 명대 이후
                                                                               중국에서 나온 판본을 가지고 『명추회요』와 대조해 보았는
            『명추회요』를 목판에                                                        데, 결과적으로는 구성이 일치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


             새긴 이유                                                             다. 그러므로 우리가 현재 접하는 『명추회요』는 고려대장경
                                                                               에 수록되기 이전의 『종경록』 목판본에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종경록』의 목판본과 관련된 아주 귀중한 단서 하나가
            _  박인석
                                                                               『명추회요』의 「발문」에 기록되어 있다. 이는 지난 호에서도

                                                                               말했던 영원유청 스님의 글(774쪽)이다. 유청 스님이 스승
                                                                               의 뜻을 받들어 『명추회요』를 만들자, 배우는 사람들이 이
                                                                               를 다투어 세상에 전하였다. 그런데 당시 책을 전달하는 경
                                                                               로는 주로 필사(筆寫), 곧 ‘베껴 쓰는 것’이었으므로, 그 과정
            『명추회요』는 『종경록』 100권 중 7권을 제외한 나머지                                   에서 오자(誤字)가 많아졌다고 한다. 이는 한문 서적의 필사

          93권의 내용을 골고루 인용하고 있다. 이 점은 이번에 출판                                    과정에서 흔히 발생하는 일로써, 가령 노나라 노(魯)를 적어
          된 책의 차례를 보면 분명히 드러난다. 차례에는 『종경록』의                                    야 하는데 고기 어 (魚)로 잘못 쓰거나, 어조사 언(焉)을 써야
          권수가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 10판, 11판 등의 ‘판(板)’이                                하는데 새 조(鳥)로 잘못 베끼는 것과 같은 경우다. 글자가

          나오는데, ‘판’은 『명추회요』를 만든 이들이 인용한 『종경록』                                  달라지면 내용이 엉뚱하게 바뀌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목판의 순서를 가리킨다. 요즘 같으면 종이로 된 책뿐만 아                                       이처럼 필사 과정에서 잘못이 생기는 경우도 있지만, 부
          니라 인터넷으로 전자책을 볼 수도 있지만, 천 년 전에는 붓                                    처님 당시에는 부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게송을 잘못 전한
          으로 종이에 직접 글을 쓰거나 아니면 이를 목판에 새겨 전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불조통기 (佛祖統紀)』를 보면 이와 관
          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련된 아난 존자의 얘기가 나온다. 아난 존자가 죽림정사(竹

            그렇다면 회당조심 스님과 영원유청 스님이 『명추회요』를                                     林精舍)에 이르렀을 때, 어떤 비구가 게송을 외는 것을 들었
          간행하기 위해 보았던 『종경록』의 목판본이 어떤 것이었는                                      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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