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 - 고경 - 2016년 2월호 Vol.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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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예.”
“그러니 묘엄이 너도 이 봉암사에서 수행을 잘 해서 장차
이 나라 불교 비구니계에 새바람을 일으키는 큰 지도자
가 되어야 할 것이야.”
성철 큰스님과 묘엄 스님이 이렇게 대화를 나눈 시기가 늦
어도 1949년 추석 전일 것인데 지금으로부터 67년 전 일입니
다. 1950년 3월쯤 청담 큰스님께서 봉암사에서 나와 고성 문
수암으로 내려오시므로 1947년 가을에 ‘부처님 법대로 살자’
던 봉암사 결사도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 후 1982년 조계종에서 종립특별선원으로 지정하고 지
금까지 산문을 닫고 서출동류하는 30리 계곡이 흐르는 봉암
용곡 골짜기에 인적을 끊고 ‘살불살조’의 수행가풍을 떨치고
있는 봉암사의 수행정신은 오늘도 꿋꿋이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중들과 함께 해주신 적명 스님과 원택 스님
그리고 성철 큰스님께서 묘엄 스님에게 “그때 그때마다 새
로운 불교의 활력을 되살린 곳이 바로 이 봉암사란 말이다.” 까이 귀한 법문을 해주시고 대웅보전 앞마당까지 오셔서 대
고 다짐 주셨듯이 종단의 큰일이 있을 때마다 청정가풍의 수 중들과 사진찰영에도 응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추위에도 아
행심으로 종단을 크게 지켜주고 있는 곳이 봉암사 종립선원 랑곳 하지 않고 신도님들은 마애불을 친견하러 종종걸음으
의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로 내달리고 있었습니다.
이번 봉암사 대중공양은 올해 들어서 제일 추운 날을 잡 ‘봉암사의 꿈’이라는 성철 큰스님의 글씨를 떠올리며 봉암
은 셈이 되었습니다. 따뜻한 남쪽 부산에 사시는 신도님들이 사 태고선원에서 정진하시는 수좌스님들은 선배스님들이 그
라 추운 날씨를 걱정했는데 모두들 튼튼히 무장하고 오셔서 렇게 바라셨던 정법안장을 갖추시어 종단과 나라의 큰 동량
잘 견디고 계셨습니다. 오후 1시에 적명 큰스님께서 45분 가 이 되실 것을 불보살님 전에 간절히 기원 드립니다.
8 고경 2016. 02.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