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7 - 고경 - 2016년 2월호 Vol.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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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를 실감한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법복에 칼바람이 들이  “ (전략)

 닥치지만, 그래도 불자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봉암사에 들어간 것은 정해년 (丁亥年), 내 나이 그때 36세
 어디를 가든 마찬가지로 백련불자들은 봉암사 대웅전으로   때입니다. 지금부터 36년 전입니다.
 먼저 향했다. 수좌스님들은 죽비 삼배로 예불을 대신했지만,   봉암사에 들어가게 된 근본 동기는, 청담 스님하고 자운
 대중들은 108배를 하고 능엄주를 독송했다. 차디찬 대웅전   스님하고 또 우봉 스님하고, 그리고 내 하고 넷인데, 우리
 마룻바닥의 냉기가 발바닥을 깨부술 듯 했지만 사람들은 꿈  가 어떻게 근본 방침을 세웠느냐 하면, 전체적으로나 개

 쩍도 않는다.     인적으로나 임시적인 이익 관계를 떠나서 오직 부처님 법
             대로만 한번 살아보자. 무엇이든지 잘못된 것은 고치고
 ● ‘성철’의 다른 이름 ‘봉암사’   해서 ‘부처님 법대로만 살아보자’ 이것이 원 (願)이었습니

 백련암 불자들은 오래 전부터 봉암사와 인연을 만들었다.   다. 즉 근본 목표다 이 말입니다.
 성철 스님이 1993년 11월 열반한 뒤 1994년 하안거부터 본격  (중략)
 적으로 대중공양을 시작했다. 성철 스님의 ‘꿈’이 실현되고 있  우리가 신심으로 부처님 법을 바로 지키고 부처님 법을
 는 봉암사가 조계종립 특별수도원으로서 계속 발전하길 바
 라는 마음에서다.             봉암사 대중스님들과 백련불자들이 함께 예불을 올리는 모습

 잘 알려져 있듯이 봉암사는 현대한국불교의 새벽을 연 사
 찰이다. 성철 스님을 비롯한 당대의 선지식 (善知識)들이 ‘부
 처님 법대로 살자’며 1947년 가을 ‘봉암사 결사’를 시작한 곳

 이다. 현재의 조계종을 규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봉암사 결사는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결사에 참여했
 던 스님들 중에서 수많은 종정과 총무원장이 나왔을 만큼 이
 (理)와 사(事)에 미친 영향력은 실로 대단했다.
 당시 봉암사 결사에 임하는 심정을 성철 스님은 <수다라>

 10집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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