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0 - 고경 - 2016년 2월호 Vol.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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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고 전했다. 에는 방부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원택 스님은 “봉암사에 올 때마다 큰스님이 말씀하셨던 ‘부 매년 1월이면 ‘만나는 사이’ (?)어서인지 적명 스님은 백련암
처님 법’을 생각하게 된다.”며 “한국불교가 제대로 수행정진 대중들을 반갑게 맞아 주신다.
해서 우리사회에 회향하기를 항상 기대한다.”고 전했다. “1966년쯤인 것 같습니다. 당시 저는 해인사 선원장을 맡
고 있었어요. 그때 도성 스님이 백련암에서 노장님을 시봉하
● 선방과 수좌들을 일깨운 선지식, 성철 스님 셨습니다. 성철 스님은 지금까지도 보면 시봉복이 있었습니
백련암 불자들은 예불을 마치고 공양간에서 맛있는 밥도 다. 어디에 있던 곁에 사람이 있습니다. 그때 성철 스님께서
먹었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대중들은 선열당(禪悅堂)에서 백련암에 오셔서 암자 전체를 새로 고치던 때였습니다.
봉암사의 어른 적명 스님을 친견했다. 주변에서 노장께서 박학다식하다기에 찾아가 대뜸 여쭈었
적명 스님은 조계종 원로의원 고우 스님과 함께 선원 최고 습니다. ‘대승비불설 (大乘非佛說)’이 사실이냐고 말입니다. 그
의 어른으로 존경받고 있으며, 영천 은해사 기기암 선원에서 랬더니 대승사상이 부처님 사상이 아니란 것은 무식한 얘기
주석하다 봉암사 대중들에 의해 2009년 2월 봉암사 수좌로 라고 하십니다. 초기경전의 팔정도(八正道), 중도(中道)는 『법
추대됐다. 대중들은 ‘조실 (祖室)’로 추대했으나 스님은 한사코
‘수좌’로 살겠다고 해 ‘조실 격 수좌’를 맡고 있다. 봉암사 태고선원
“봉암사가 이제는 고향 같습니다. 절이 바위 아래 있어서
그런지 다른 기가 느껴집니다. 그리고 봉암사 대중 사이에서
는 시비가 없습니다. 각자 다른 일을 하고, 험한 장면이 있어
도 시비를 걸지 않습니다. 아마도 곧 다시 힘들게 참선 공부
를 해야 하기 때문에, 또 그 힘든 것을 알기에 그런 것 같아
요. 서로에 대한 신뢰가 깊습니다. 이 모든 것이 선풍으로 면
면히 내려와서 그런 것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
이번 동안거에 봉암사에는 전국에서 온 선객 (禪客) 61명이
태고선원 큰방인 서당(西堂)과 남훈루(南薰樓) 등에서 수행하
고 있다. 정진이 가장 고된 성적당은 보수공사 관계로 이번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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