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4 - 고경 - 2016년 2월호 Vol.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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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추회요』, 그 숲을 걷다          ●   글 _ 박인석                                  하곤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말’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그것이 지니는 위력에 비해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크다. 그런데 우리가 사용하는 말이 생사윤회 (生死輪廻)를 일
         이름과 실제의 관계                                                            으키는 근본적인 힘이라고 말해본다면, 이런 경우 말의 위상
                                                                               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까.
                                                                                 필자는 한 대학의 철학과에서 1년에 한 학기씩 불교철학을

                                                                               강의하고 있다. 불교는 엄연히 현실의 종교이긴 하지만, 그것
                                                                               이 지니고 있는 철학적 사유의 탁월함으로 인해 철학과에서
                                                                               는 빠지지 않는 강의 과목으로 자리 잡고 있다. 매번 학기가

                                                                               시작되면 필자는 처음의 1~2주 동안에는 부처님의 생애를
                                                                               소개하는데, 여기에는 부처님이 성도하기 전까지 겪었던 여러
           ●                                                                   가지 과정들이 잘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명추회요』 98쪽의 글은 ‘유심 (唯心)의 오묘한                                다들 아는 것처럼, 부처님이 목표로 삼았던 것은 생로병
         종지’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실제

         로는 ‘이름’과 관련된 불교 전통의 논의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
         게 된다. 여기서 이름이란 호칭, 명호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
         다 넓게 보자면 ‘말’을 뜻한다. 그러므로 이 단락의 논의는

         ‘이름과 실제’ 혹은 ‘말과 실제’의 관계를 논하는 것으로, 동・
         서양을 막론하고 아주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철학의 고전적
         인 주제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것에 대해서는 그 존재를 망
         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령 우리가 숨 쉬고 있다는 사실

         은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가끔 황사가 심하게 부는 날에나 맑
         은 공기 속에서 숨 쉬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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