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1 - 고경 - 2016년 3월호 Vol.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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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받고 나서야 희양산문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있었다.

 경내 역시 안개가 자욱했지만 봉암사는 봉암사였다. 모든
 것이 반듯해 보였다. 경내를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도 우렁찼
 다. ‘종립 (宗立)’ 선원의 기상(氣像)이 빗속에서도 어김없이 느
 껴졌다.
 대웅전을 참배하고 수좌 적명 (寂明) 스님을 뵙기 위해 동방

 장(東方丈)실로 갔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인지 대중
 공양을 올리러 온 불자들과의 차담이 계속되고 있었다. 인터
 뷰를 위한 결의 (?)를 다질 겸 대웅전으로 가 108배를 올렸다.

 몸과 마음에 긴장이 생겼다.                                 한 겨울 봉암사 풍경


 ● 진짜 어른의 역할  요. ‘제1조 간화선 수행자만 방부를 들일 수 있다’를 비롯해
 마침 불자들은 기분 좋은 표정으로 동방장실을 나오고 있  모두 9개 조항이 있습니다. 내규를 시행한다고 공표했을 때
 었다. 선지식 (善知識)을 친견하고 나왔을 때의 그 얼굴이었다.   대중 숫자가 50명도 안 될 줄 알았는데 그래도 많은 사람들

 2009년 2월 스님이 봉암사의 ‘조실 격 수좌’로 추대됐을 때부  이 왔어요. 사소한 내용일 수 있지만 규제에 상관없이 공부하
 터 여러 차례 뵙고 많은 말씀을 들었지만 막상 스님 방에 홀  겠다는 사람들이 아직 많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로 다시 앉으니 또 새롭다.   적명 스님은 봉암사에서는 간화선 수행을 우선에 두지만

 “이번 철에는 61명의 대중이 함께 살았습니다. 지난 여름에  평소 스님들이나 불자들의 개인 수행으로 위빠사나나 다른
 는 70명쯤 살았는데 이번 철에는 성적당(惺寂堂) 보수공사를   수행법을 배격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한다고 대중이 좀 더 줄었습니다. 그래도 대중 모두가 열심히   적명 스님은 수좌 소임을 맡을 때부터 태고선원 서당 큰방
 정진하고 있어 분위기는 더 좋은 것 같기도 합니다.”  에서 대중들과 함께 정진을 했다. 몇 년간 어김없이 대중 속
 말씀을 들으며 궁금한 것이 생겼다. 안거 때면 보통 90명   에 있었지만 얼마 전부터는 허리가 아파 정진 시간을 좀 줄였

 이상이던 대중 숫자가 많이 준 것이다.   다. 사실 78세에도 대중들과 같이 정진하는 것은 쉬운 일이
 “봉암사 자체 내규(內規)를 지난 여름부터 시행하고 있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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