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4 - 고경 - 2016년 3월호 Vol.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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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니다. 연기(緣起)는 공(空)입니다. 공(空)은 중도(中道)이고
불이입니다. 둘이 아니라는 것은 너와 내가 둘이 아니고 이
세계가 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선사들은 이것을 세계일화
(世界一花)라고 말씀하셨어요.
깨닫고 난 뒤에는 정서적으로 자유로워집니다. 온갖 감정
에서 해탈하는 것이에요. 또 지적인 장애에서도 벗어납니다.
깨달은 이들의 특징을 들자면 자비심 (慈悲心)이 생긴다는 것
입니다. 모든 사람을 가족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불이는 진
정한 사랑이 됩니다. 진정한 사랑은 대자대비 (大慈大悲)로 표
현됩니다.” 적명 스님이 원택 스님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스님은 깨달음이 불이로 연결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깨달
음이 문자로만 남아서는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스님은 최근 이 깨달음의 한 과정이라고, 깨달음을 위한 준비의 한 단계라
벌어진 깨달음 논쟁에 대한 생각도 전했다. 고 볼 수 있다고 하면 현응 스님이나 수불 스님 모두 어렵지
“최근에 현응 스님이 한 번 다녀갔습니다. 현응 스님은 자 않게 접점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신이 말한 ‘이해’가 관용적으로 쓰이는 그 이해가 아니라고 스님은 한국불교가 깨달음 지상주의에 빠져 있다는 일각
해요. 반야(般若)의 다른 표현이라고 했습니다. 현대 사람들에 의 지적에 대해서는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오히려 깨달음
게 가장 적절한 표현으로 이해를 썼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하 에 제대로 매달린 적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면 특별히 잘못된 것은 없다고 봅니다. 다만 언어 선택에 오 “불교라는 종교는 깨달음이 있기에 성립되는 것입니다. 깨
해의 소지가 좀 있었다고 할까요? 달음 없이 불교는 있을 수 없어요. 석가모니 부처님이 6년간
그런데 단순한 이해라는 것도 즉, 지적인 이해라는 것도 사 의 고행 끝에 깨달음을 얻고 교진여를 비롯한 5비구를 만났
실은 교학적 입장에서는 가끔씩 써오던 표현입니다. 보조 스 습니다.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면 아마 내려오지 않았을 것입
님이 깨달음의 과정에는 ‘지무생사(知無生死)’, ‘체무생사(體無 니다.
生死)’, ‘계무생사(契無生死)’, ‘용무생사(用無生死)’가 있다고 하 지금 한국불교는 깨달음에 집중하지 못해서 탈입니다. 진
시면서 ‘지무생사’ 즉 ‘이해’를 말씀하셨거든요. 이해라는 것 력하는 게 왜 허물인가요? 『법화경』 「화성유품(化城喩品)」에
22 고경 2016. 03.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