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9 - 고경 - 2016년 3월호 Vol.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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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어록의 뒷골목 ● 글 _ 장웅연 했다. “내게 저 물병을 가져다 다오.” 스님이 물병을 가져
다줬다. “다시 본래 있던 곳에다 둬라.” 스님이 다시 물었
다. “어떤 것이 본래의 몸인 노사나불입니까?” 국사가 대
그대만, 남겨라 답했다. “옛 부처님이 이미 지나가신 지 오래다.”
눈앞에 사과가 있었다. 그래서 먹었다. 창자 속에서 흐르는
목숨. 나는 그가 만든 강물 위에 누워 또다시 다가올 내일을
염려하고 있다. 허기를 삼킨 식욕은 머지않아 또 다른 허기에
인생은 여행 혹은 게임이다. 게 자리를 빼앗기고 만다.
앞으로도 무수한 생명들이 내 안으로 들어왔다가, 달래었
여행이므로, 모험을 즐겨도 괜찮다.
다가, 똥으로 빠져나갈 것이다. 살아있으라 살아있으라… 별
게임이므로, 질 수도 있다.
로 살고 싶지 않는 나의 입을 억지로 벌려, 자신의 몸을 으깨
이러나저러나 끝은 죽음. 어가며 재촉한다.
안타깝지만 그리 미안하지는 않다. 나 역시 누군가의 오징
멀리 가도 좋고
어다리가 되어 잘근잘근 씹히고 있으니까. 어제 먹은 그 사과
돈을 잃어도 좋다.
가 훗날 다시 나의 표적이 되더라도, 걱정 마라. 이미 나는 복
그대만, 남겨라. 숭아나 쇠고기가 돼버린 채여서, 내게는 입이 없을 것이다.
만유(萬有)의 쉴 새 없는 먹음과 먹힘 속에서, 결국은 본전
● 이라고 자위한다. 너도 보살 나도 보살. 너도 개새끼 나도 악
제42칙 마. 물병의 위치를 옮기듯, 죽음이란 그저 이 방에 있다가 저
남양의 물병(南陽淨甁, 남양정병) 방으로 들어가는 일. 옛 부처님이란, 방금 전에 먹었던 사과
또는 욕설.
어떤 스님이 남양 혜충(南陽慧忠) 국사에게 물었다. “어떤 돌이킬 수 없고 앞질러야만 하는 1차선 위에서, 나는 조금
것이 본래의 몸인 노사나불(盧舍那佛)입니까?” 국사가 말 달리 생각하기로 했다. 속절없이 뒤처지다 보면, 본래 자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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